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러시아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산혁명을 피해 만주로 넘어온 백계 러시아인들은 범이나 사슴사냥을 하면서 그렇게 비적토벌도 했다.

그들은 영리에 밝은 사람들이었으며 녹용의 수요가 크게 불어나는 것을 보고 사슴목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사슴을 잡는 일도 하고 사육하는 일도 했다. 사슴은 병에 강한 짐승이었고 1년에 한번씩 뿔을 갈았기 때문에 사슴목장 경영은 잘 되었다. 그래서 양코프스키 일가는 그곳 만주땅에 눌러앉을 수 있었다. 만주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이나 녹용거래를 하는 사람치고 양코프스키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문제는 범과 비적이었다. 범은 만주의 산림에서 사슴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포식동물이었는데 그들이 우리안에 사슴들이 몇십마리씩 갇혀있는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 대규모의 사슴목장이 있는 지림성 북동부 원시림에 범과 표범들이 모여들었다.

본디 범은 일정한 텃밭이 없이 넓은 원시림을 떠돌아다니는 짐승이었는데 광대한 시베리아에서 서식하며 시베리아 백호와 조선에 서식하던 조선범까지도 그리로 이동해왔다.

시베리아범은 범종류들중에서 가장 큰 거물이었으며 몸무게가 백관(400㎏)나 되는 놈들도 있었다. 시베리아범들은 그래서 두려움을 모르고 움직이는 것을 보기만 하면 마구 덮쳤다. 사슴목장의 사슴들뿐만 아니라 만주의 개척민들이 사육하는 돼지나 당나귀들도 그들의 먹이가 되었다. 조선범은 좁은 조선땅에서 박해를 당해 만주로 이동해왔는데 덩치는 좀 작았으나 영리하고 용감한 범들이었다.

그 당시 1930년대에는 중국본토에서 많은 농민들이 만주로 몰려왔다. 인구가 과민한 본토에서 살지못하게된 가난한 농민들과 실업자들이 덮어놓고 만주로 몰려와 광대한 산림의 기슭에 개척마을을 만들어 밭을 가꾸고 있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일본인까지도 개척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북만주 침략을 시작한 일본 관통군의 뒷받침을 받은 일본의 농민들이 중국인 지주로부터 헐값으로 산기슭 땅을 사들여 개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중국인 개척마을처럼 야생 짐승들의 피해를 받았다. 멧돼지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밭들을 짓밟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고 그들 멧돼지들을 노리고 범들과 표범들이 날뛰었다.

범들은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개척마을도 덮쳐 가축 돼지들을 잡아먹었고 그걸 막으려는 사람들도 해쳤다. 거의 매일같이 범들에 의한 인축의 피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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