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인 2012년 봄에도 충남 서부 지역의 가뭄은 극심했다.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물이 없어 난리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시·군 기초자치단체들은 급히 예비비를 동원해 관정을 팠다. 관정을 판다고 모두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수맥이 지나는 곳을 정확히 탐지해 뚫어야 하지만 모두 적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홍성군 서부면의 한 골짜기에서 수맥을 찾는데 성공해 물이 나온다는 곳을 취재진들이 가본 적이 있다. 상당히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땅속을 파 들어가는 관정굴착장비 하단에서 약간의 물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석회질이 섞인 듯 온통 희뿌연 색깔의 지하수여서 개운치 않은 마음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3년 반이 지난 지금 같은 곳의 극심한 가뭄은 그때보다 더하다. 농업용수만 모자란 게 아니라 생활용수도 부족하다. 수돗물을 제때,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충남 서부 여덟 개 시·군 중 대체할 상수도 시설이 부족한 홍성군은 지난 1일부터 2개 권역으로 나눠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제한적인 단수를 실시하기도 했다. 오늘부터는 홍성군뿐만 아니라 여덟 개 시·군 전역에서 공급량을 20% 줄이는 제한급수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리 물을 받아놓고 쓴다 해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특히 물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식당과 목욕탕, 수영장 등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지만, 불편으로 인한 짜증과 고통은 가시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불편을 내년 봄, 혹은 내년 여름 장마 전까지 내내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현재 저수율 22%를 간신히 유지하는 보령댐의 물이 내년 3월쯤이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하루이틀, 열흘도 아니고 장장 반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물부족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니 지역주민들은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에 정부가 최근 내린 결정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놓은 부여 백제보에서 보령댐까지 40번 국도를 따라 총연장 21㎞의 도수로를 짓기로 한 것이다. 예상되는 공사비는 625억 원, 착착 진행된다면 내년 2월쯤 완공될 것이라고 한다. 이 도수로가 개통되기만 하면 백제보에 가두어놓은 물 11만5000t을 매일 보령댐으로 흘려보낸다는 게 이 결정의 골자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테지만, 깨끗하지 않은 금강물이 보령댐 물과 섞여 담수호 물이 더러워지는 점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더러워진 물은 일단 정수하면 된다. 물부족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어서 이 계획이 취소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도수로 건설 계획은 충남도가 3년 전부터 건의해온 것이라는 게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여태까지 실행되지 못한 건, 정부가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해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공무원은 40년, 50년 주기의 극심한 가뭄 예측이 들어맞는다 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보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년 전 충남도가 올린 보고서는 국토교통부의 책장 혹은 캐비닛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듯싶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실행될까. 무릇 모든 행정은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 허점을 남겨 사후감사에 적발될 여지는 없어야 하는 게 최우선이다. 허승욱 충남도 정무부지사는 이 도수로 공사를 착공하려면 사전 인·허가 절차가 17개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많은 기관의 검토와 결재를 거쳐야 할 17개 절차를 빨리빨리 밟아달라는 뜻인데, 허 부지사의 희망대로 될지는 미지수이다.

심한 물부족 고통에 시달리는 이 여덟 개 시·군은 충남도 산하 15개 시·군의 절반을 넘고, 인구로 따지면 대략 5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달리 보면 우리나라 인구의 1%밖에 안 되고 국회의원 선거구는 다섯 개밖에 안 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별다른 목소리가 없던 서해안 일부 해안가 동네에 불과하다. 공천룰 정국에만 관심을 쏟는 높은 분들이 행여 이렇게 볼까 걱정된다. 이런 걱정이 틀렸으면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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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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