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특히 국정감시를 위해 눈에 불을 키고 있어야할 야당의원들이 당내 계파싸움으로 국정감사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했으니 이러고도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국회를 흔히 말해 입법부라고 하지만 국회가 입법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인가!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일 년에 한 두번씩 의원 입법이라는 것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부로부터 이송해 오는 법안을 심의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부로부터 이송되어온 법안의 심의에 있어서도 의회가 심의하기 이전에 정당이 사전심의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심의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당론이 우선시 된다. 그러니 국회의 입법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알 수 있다.
국회가 가지고 있는 권한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예산심의권이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안의 내용을 드려다 보면 국회가 심의할 수 있는 부분은 참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공무원이나 군인의 월급같은 경직성 예산이나 계속사업비나 법정사업예산, 국제협약에 따른 분담금 같은 것은 처음부터 심의대상도 되지 않는다. 국회가 심의할 수 있는 예산은 고작해야 대략 전체예산의 30%도 안되는 투자예산뿐이다.
이 투자부문도 어떤 경우는 수년간에 걸친 연구용역의 결과로 나온 경우가 많아 그 규모의 크고 적음과 액수의 다과를 국회의원 개개인이 가늠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파킨슨의 법칙`이 나오게 된 연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산 액수와 심의시간은 반비례한다"는 법칙 말이다.
언뜻 들으면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여간 정확한 법칙이 아니다. 수천억이나 조(兆)단위로 나가는 사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런 정도의 예산이라면 정부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연구해온 결과로 나온 것이다. 그런 예산을 국회의원이 책상에 앉아서 관·항·목 모두를 분석하여 그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억 또는 수십억정도의 예산사업은 개별국회의원이 판단하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 심의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에서 자주 회자되는 쪽지 예산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말 그대로 하면 개별국회의원의 지역구 사업용 예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전체예산의 20%도 채 심의하지 못하면서 쪽지 예산만 늘어간다면 그야말로 예산심의권은 형해화(形骸化)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쪽지는 쪽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왜곡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입법권도 예산심의권도 허울뿐이라면 국회가 가지고 있는 대정부 견제권중에서 남아 있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바로 국정감사권이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에는 별다른 한계가 없다. 개별 국회의원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정권을 뒤바꿔 놓을 만한 비리를 들춰 낼 수도 있고 왜곡된 정책을 바로 잡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정감사가 정기국회에 주어진 이유는 그 감사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예산안을 심의하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정의 내용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산 심의를 할 것인가? 국정감사를 세밀히 한 사람만이 비로소 국정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는 어쩌면 야당에게 주어진 특권이기도 하고 야당이 집권통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19대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수박겉핥기라니! 야당이 스스로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집권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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