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로트렉`, `모더니즘의 선구자`.

구본웅(1906-1953)의 이름 앞에 으레 붙는 존칭이다. 부유하고 진보적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무렵 모친을 여읜 화가는 하녀의 등에 업혀 젖동냥을 다니다 그만 실수로 어린 구본웅을 댓돌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꼽추가 되고 만다. `한국의 로트렉`은 프랑스 난쟁이 화가 `툴루즈 로트렉`과 닮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불운의 생채기다.

영문판 서양 잡지 위에 나부형의 목각인형이 누워있는 `인형이 있는 정물(1937)`은 화실의 여러 소품을 소재로 그린 단순한 그림이다. 그러나 작품에 담긴 의미를 요모조모 살펴보면 당시 1930년대 시대상과 미술사적인 여러 경향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화가의 `절친`인 시인 이상의 초상화로 알려진 `우인상`, `여인` 등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림 속 영문 잡지는 전위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던 미술잡지 `카이에 다르(Cahiersd`Art)`로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화가의 정체성을 암시하고 있다. 목각인형은 건강미 넘치는 전라의 여인이 대담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형상이다. 한쪽 팔을 머리위에 얹고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에서 누드가 연상된다. 진보적 화가를 은근히 암시하는 복선일 게다.

굵고 강한 선묘와 배경의 어두운 색조, 거친 붓질은 표현주의, 각기 다른 시점으로 묘사된 탁자와 굽 높은 접시에 담긴 포도와 잡지 등의 묘사는 큐비즘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 인형을 기하학적으로 접근한 점에서는 야수파적 시각도 보여진다. 당시로선 상당히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서구 화풍을 복합적으로 버무려 작품을 완성했다. 다양한 기법과 서구의 신문물을 체화(體化)하려는 화가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작품이라 하겠다.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던 구본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과 이종우로부터 서양화를, 김복진으로부터는 조각을 배웠다. 스물 한 살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얼굴습작`이란 소조 작품을 출품해 특선을 했을 정도다. 그 후 일본 유학을 통해 혁신적인 모더니즘 화풍을 접하고 국내 화단에 접목시켰으며, 비평가로 활동할 정도로 이론에도 밝았던 화가였다. 구본웅이 모더니즘의 기수, 또는 선구자는 불리는 것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붙인 말 추렴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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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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