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 생각에 잡긴 것인지 아니면 음악 감상에 심취한 것인지 표정이 골똘하다.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머리, 정갈한 옷매무새에서 교양미와 고상함이 넘쳐난다. 미모까지 겸비해 마치 미인도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현초 이유태(1916-1999)가 20대에 그린 `화운(和韻·1944)`이란 작품이다. 화제인 `화운`은 남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로 화답하는 시를 짓는다는 의미다. 현초는 시 대신 그림으로 자신에게 응답을 했다. `화운`을 완성한 후 `탐구(1944)`로 답을 했다. 두 작품은 한 쌍이다. 모델까지 동일인이라고 하니 작심을 한 역작이 분명하다.

`화운`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피아노, 꽃병, 탁자가 있는 서구식 방안에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있다. 어쩌면 유성기를 통해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고 있거나 방금 직접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의 여운에 잠겨있을 지도 모른다. 한복차림이지만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자태가 강하게 풍긴다.

`탐구`는 같은 `화운` 속의 여성이 흰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 옮겨 앉은 것과 진배가 없을 정도로 닮아 있다. 여인의 뒤에는 여러 가지 실험 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앞에는 현미경과 실험대상이 토끼가 보인다.

화가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연구를 통해 사회활동을 하고 퇴근해서는 집에서 피아노 연주에 음악 감상도 하는 근대 여성의 이상적인 생활상을 옮겨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작품의 의미를 더 확장하면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신여성의 일터와 가정, 지성과 감성을 대비하고 있음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할 수 있겠으나 당시는 그렇지가 않았다. 남존여비와 봉건주의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였다. 작가는 감히 꿈꿀 수도 없는 미래의 시대를 예술이라는 언어를 빌려 예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화가는 전통 산수화에 대한 뿌리는 의식했던 모양이다. 얼굴을 보자니 전형적인 미인도가 연상된다. 멀게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가깝게는 스승인 김은호의 미인도가 연상된다. 그리고 여인을 위해서 부귀와 풍요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한아름 안겨줬으니 말이다. 화운과 탐구, 두 작품을 비교해서 보면 그림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김은호의 제자인 현초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유학을 거쳐 이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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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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