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 무위로 끝났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년 20대 총선과 관련한 선거구 획정 등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활동에 들어갔던 국회 정치개혁특위 얘기다. 국회 정개특위는 지난해 10월 현행 선거구 인구편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활동을 벌였지만 선거구 획정 기준은 물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국회 정개특위로서는 5개월이라는 시한이 선거구 획정 기준을 비롯해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배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등 복잡다단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핵심 쟁점들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당리당략적 이해와 권역별 지역구 사수라는 소아병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의 반성이 요구된다.

당초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결정 이후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국민의 따가운 눈총 탓인지 여야 모두 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유지하겠다는 대원칙은 세워놓은 상태다. 하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와 가장 적은 선거구의 편차를 현행 3분의 1일에서 2분의 1 이하로 줄이라는 헌재의 결정은 투표가치의 평등성이라는 헌법 이념을 중시한 것이었기에 지역 대표성을 강조하는 농어촌지역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여전하다. 여야를 불문하고 농어촌지역 의원들은 비례대표 축소나 지역구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막판에 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사실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제도 개편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뿌리 깊은 지역 대결구도와 이념 대립이 심한 우리 정치현실은 의석 하나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한다. 그래서 여야와 영호남, 도시지역과 농어촌지역의 셈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각 권역별 지역별로는 선거구 수를 늘리기에 안감힘을 쏟거나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민관정협의체를 구성해 범시민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당위성과 절박성을 앞세워 정치권을 압박하고 여론에 호소하는 곳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충청권의 경우 그동안 영호남의 틈바구니에서 표의 등가성을 가장 크게 침해 받았기에 헌재 결정에 따른 선거구 증설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미 대전은 오래전부터 민관정협의체나 범시민운동단체를 결성해 조직적인 활동을 하고 있고 천안시와 아산시도 엊그제 협의체를 결성하고 역량 결집에 나선 상태다. 이번만큼은 제 몫을 찾겠다는 의지가 결연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아 보인다. 대전 유성구가 분구되고 천안과 아산도 각각 증설 요건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역학관계상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개특위가 지난달 말 소득 없이 활동을 종료했지만 국회법에 따라 당분간 존속을 하게 되어 있다. 여야도 정개특위 활동시한을 11월까지 연장키로 합의해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제도 개선을 논의할 시간을 잠시나마 번 셈이다. 그러나 진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기국회 와중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것은 뻔하다. 결국은 시간에 쫓겨 여야 지도부간 타결을 도모할 공산이 크고 그럴 경우 선거구 몇 개 조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충청권의 선거구 증설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개특위는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정치발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압에 흔들리거나 지도부의 눈치를 살펴서는 안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근거지가 되는 영남이나 호남이 그동안 선거구 획정에 있어 알게 모르게 충청권에 비해 상대적 이익을 봤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정개특위는 이런 정치적 고려는 버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해 선거구 획정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충청권에 대한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간 훼손당한 표의 등가성을 회복시켜달란 얘기다.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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