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섶에 눕고, 쓰디쓴 쓸개를 맛보다`라는 뜻으로,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비유한다. 원(元)나라 때 `증선지(曾先之)`가 지은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유래했다. 본래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서도 언급됐지만, `와신(臥薪)`이라는 말은 없다.

……오(吳)나라가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오나라 왕 `합려(闔廬)`가 부상당해 결국 죽었다. 그래서 아들인 `부차(夫差)`가 즉위했다. `오자서(伍子胥)`는 `합려`에 이어 `부차`를 또 섬겼다. `부차`는 월나라에 복수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저녁으로 불편한 섶에 누워 있다가(朝夕臥薪中) 출입할 때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이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而忘越人之殺而父邪)" 주(周)나라 경왕(敬王) 26년에 `부차`는 `부초(夫椒)`에서 월나라를 패배시켰다. 월나라 왕 `구천`은 남은 병력을 가지고 `회계산(會稽山)`에 머물면서, `부차`에게 자신은 신하로 자신의 처인 `서시(西施)`는 첩으로 삼아달라고 간청했다. `오자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오나라 재상인 `백비`는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 월나라를 용서해주자고 `부차`를 설득했다.

그래서 `구천`은 월나라로 돌아가서, 앉고 눕는 곳에 쓸개를 매달아두고(懸膽於坐臥), 쓸개를 쳐다보고 맛보며(卽仰膽嘗之) 말했다.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女忘會稽之恥邪)" 국정(國政)은 대부인 `문종(文種)`에게 맡기고 군사는 `범려`에게 훈련하게 하여, 오나라를 치려고 계획했다.

`와신상담`은 결국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지난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었다. 1910년에 있었던 일이니 100년이 넘긴 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너무 많아 쉽게 잊고, 수치스런 일은 얼른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서일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가 떠오른다.

충남대 국제화사업단 부장·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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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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