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는 선비들이 사랑하는 완상물 중 하나다. 마당에 파초를 심어놓고 넓고 시원스럽게 생긴 잎을 감상하고, 파초 잎에 떨어지는 청아한 빗소리를 즐겼다. 넓은 잎을 종이삼아 글씨를 쓰기도 했으며 그림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다.

파초그림 중 백미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의 `파초와 잠자리`다. 파초 두 그루와 잠자리, 남성의 무게감을 상징하는 괴석, 이름 모를 초목이 전부다. 흔히 볼 수 있는 초충도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소재와 기법을 살펴보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초는 남방계 식물이라 가을에 잎을 자른 후 뿌리를 잘 관리해야 얼어 죽지 않고 봄에 싹이 돋는다. 겨울에는 얼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이 돋는다하여 기사회생을 , 넓고 큰 잎은 부귀를 상징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단원의 그림 속에도 파초 잎이 자주 등장한다. 파초 잎을 방석삼아 앉거나, 옆에 놓고 생황 등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의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파초와 잠자리, 다소 생뚱맞은 조합일 수 있다. 잠자리의 별칭이 `청낭자(靑娘子)`, 즉, 젊은 처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두 그루의 파초 뒤에 자리 잡은 괴석은 남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울퉁불퉁하게 표현해 야성을 강조했다. 잠자리의 방향이 괴석 쪽을 향하고 있다. 이정도면 그림의 의미가 절반은 풀린 셈이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재가 살던 시대에는 부귀, 젊은 여자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절이다. 더군다나 대역죄인의 후손으로 곤궁한 삶을 살아가던 현재였으니 부귀에 대한 갈망이 오죽했겠는가. 비바람에 찢겨진 파초의 잎도 그런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기 위한 복선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어느 평자는 `파초와 잠자리`를 고독과 우수의 정서와 함께 어린 미인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보여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엷은 담청의 파초 잎은 청량감을 준다. 비 개인 오후 강한 햇살과 함께 맑고 깨끗한 공기가 주는 그런 청량감 말이다. 잠자리 날개 짓의 작은 파장이 오랜 정적을 깨트리면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림이 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현재는 평생 불우하게 살았다. 명문가였지만 조부가 과거 시험 부정사건에 이어 영조가 세자일 때 세자 독살 음모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평생 직업화가의 길을 걸었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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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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