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썰매마을에서 온 진짜 썰매사냥꾼들은 침착했다. 그들은 그렇게 급하게 경사진 눈언덕속에서도 썰매의 진로와 속력을 잘 조절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실종조들의 앞에서 멈췄다.

"자 이젠 걱정할 것 없어. 우리가 왔어"

구조대들은 신속했다. 그들은 들고온 들것에 부상자들을 실고 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출발점이 있는 위쪽이 아니라 기슭이 있는 아래쪽이었다. 그게 빨랐다.

그 산기슭에는 썰매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등산로가 있었다. 바위나 나무사이에 굵은 밧줄을 연결해놓고 썰매꾼들이 그 밧줄을 잡고 쉽게 위로 올라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구조대들은 아랫마을로 가지 않고 그 등산로를 타고 썰매마을로 올라갔다.

그날밤 늦게 구조대들이 마을에 도착했다.

썰매마을에는 그런 부상자들을 돌봐줄 수 있는 장로영감이 있었다. 웬만한 의사보다 나은 영감이었다.

영감은 환자의 부러진 뼈를 붙혀 맞춘 다음 판자에 고정시켜놓고 붕대를 두껍게 감아놓았다.

뼈가 부러진 환자들은 생명에 이상이 없고 병신도 되지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어깨보다 열상을 입은 젊은이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다음날에 숨을 거두었다.

그로써 폭설이 퍼붓은 강원도 산꼴에서 짐승사냥을 하겠다고 나선 여섯 명의 젊은이 중에서 두사람이 희생된 셈이 되는데 네 사람이 살아나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의 산꼴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사냥터가 아니었다.

매년 봄이 되어 그곳 계곡의 눈들이 녹으면 많은 사냥꾼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적어도 서너구의 시신들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시신들뿐만이 아니었다. 멧돼지 사슴 노루 늑대들의 시체도 발견되었고 산양들의 시체도 발견되었다. 험중한 산에서 사는 산양도 강원도의 폭설에 이겨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조말엽 조선조 왕실의 어용엽사로 활약했던 이윤회포수도 그 폭풍과 폭설 때문에 강원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강원도의 썰매사냥꾼의 활약에 흥미를 느껴 썰매마을에 3-4일쯤 머물다가 한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폭설과 폭풍에 갇혀 한달반동안이나 머물고 있었다. 눈이 사람 키만큼이나 쌓여있어 길이 막혀있었다.

그 폭풍과 폭설은 2월말에는 멈춰 막혀있던 길들이 터졌으나 그래도 이포수는 한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예기치않았던 일이 벌어졌기때문이었다. 썰매마을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있는 산꼴마을에 만주범이 나타나 사람과 가축들을 잡아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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