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해주는 주변인 삶의 희망·용기를 주는 힘 세상 떠나도 마음엔 영원히 사람은 혼자가 아님을 명심

한 달 전 노총각 딱지를 뗀(노총각이란 개념이 무색해진지 오래지만) 새신랑이랑 동석하게 되었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문상자리에서다. 십여 년 만에 선후배들을 만나 참 반가웠다. 술잔을 기울이며 후배에게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늦었지만 결혼 축하한다고 했다.

새신랑은 만면에 웃음만발. 시종일관 깨소금 내를 풍기면서도 2,3차로 이어진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출산율이 저조한 이 엄중한 시국에 백두대간의 밤을 술집에서 밝힐 심산인가 보다. 전화를 받는다고 여러 번 들락날락하면서도 희희낙락이다. 색시가 기다릴라 그만 들어가라는 선배들의 걱정에 한술 더 뜨는 새신랑. 대취해 들어가 큰 대 자로 누워 꼼짝 하지 않아야 색시가 1번 단추부터 마지막 지퍼까지 깔끔하게 다 벗겨 재워준단다. 그런 연유로 시방, 대취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그 염장질에 분노한 사람이 있었으니, 원치 않는 노총각 경력을 늘려가는 중인 어느 형님이 가차 없이 오징어포 세례를 퍼부었다. 이어 애 낳고 돌만 지나 봐라, 세월을 건너온 선배들의 비아냥거림이 빗발쳤고 좋을 때니 즐겨라 그런 덕담을 보내는 노선배도 있었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은 젓가락질부터 다르다. 입을 벌리는 크기부터 다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안 먹어도 배 부르다. 다이어트가 절로 된다. 웃음을 머금은 자리가 환하다. 뒤에 사랑 하는 사람이라는 막강한 힘을 업고 있기 때문이다. 내 뒤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항상 당당하다. 위기의 순간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확률이 적다. 사랑과 믿음을 많이 받고 자라는 아이들일수록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자존감이 충만하다.

그런데 사랑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간다. 오늘도 이별의 슬픔을 나누려고 여기 모였다. 10여 년 만에 옛 친구들 다 모였다고 했더니 선배가 그런다. 현이도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마음에 기대 힘을 내고 일어설 거라고. 당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배는 얼마 전 사랑 하는 아내를 떠나보냈다고 한다. 나는 까마득히 몰랐다. 7년간의 암 투병. 날마다 쓰며 실행에 옮겼던 버킷 리스트와 1200번째까지 써내려간 아내의 감사 일기장. 막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보는 게 마지막 버킷리스트였는데 그 걸 하지 못하고 떠났단다. 7년 동안 70년에 걸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고 했고 투병하면서 정말 그렇게 했단다. 그래서 후회는 없단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를 배려한 자기암시일 것이다.

얼마 전 선풍기를 꺼내며 울컥, 차 오르는 눈물 주체할 수가 없어서 고꾸라질 것 같더란다. 근 10년 만에 만난 선배에게 듣는 이별가. 선배가 견뎌야 할 무게로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지난초가을, 아내와 선풍기를 닦아 넣던 날이 불쑥 선배를 덮쳤듯이 아내의 빈자리마다 남모를 속울음들, 주머니마다 그득 그득 차고 넘치는 날 얼마나 많았을까. 앞으로 또 얼마를 덜어내야 할까.

할 말을 잃고 나는 마음으로 건넨다. 사랑 하는 사람이, 변치 않는 사람이 저기 저 해로 저기 저 달로 항상 보고 있으니 어깨 펴시라고. 새신랑처럼 씩씩하시라고. 입을 더 크게 벌려 아내의 소원밥을 드시라고. 저기 저 하늘에 낮 밤으로 든든한 빽이 보고 계시지 않느냐고.

그리고 오늘 아버지를 보내드린 친구여, 곧 있을 네 생일에 내 딸 생일 축하한다. 말해줄 아버지 아니 계시지만 친구여, 저렇게 너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지 않니? 대취해 들어와 누운 선배의 옷을 벗겨 주진 못하지만 선배여, 사랑 하는 아내가 어두운 거리 비추는 달빛 속에 숨어 보고 있네요. 가을 속에 깃들어서 그렇게 사랑조차 익히고 있네요.

그리고 꼭 1년 전 엄마를 보낸 사랑하는 내 조카, 슬기야! 한가위엔 엄마가 더 밝게 우리 곁으로 오시겠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 보름달이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달에 물을 주자꾸나.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보며!

김미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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