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3월 28일자 2면 '자라는 大韓' 동요 발표, 64년 만에 게재일 확인

‘한국의 안데르센’ 강소천 선생이 월남 후 처음으로 발표한 동요 ‘자라는 大韓’이 게재된 1951년 3월 28일자 2면 대전일보 원문.  대전일보 DB
‘한국의 안데르센’ 강소천 선생이 월남 후 처음으로 발표한 동요 ‘자라는 大韓’이 게재된 1951년 3월 28일자 2면 대전일보 원문. 대전일보 DB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거목인 `한국의 안데르센` 강소천 선생의 월남 후 첫 동요 작품인 `자라는 大韓`이 대전일보 1951년 3월28일자에 발표된 사실이 64년만에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한 `자라는 대한`이 대전일보에 게재된 것을 계기로 당대 아동문학의 쌍두마차인 윤석중 선생과 강소천 선생이 6·25전쟁 중 대전에서 첫 조우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대전일보는 창간65주년을 맞아 창간초기(6·25전쟁) 대전일보 자료를 검색하던 중 1951년 3월28일자 2면 하단부에 박스기사 형태로 게재된 `자라는 大韓`이라는 동요를 찾아냈다. `육군772부대 충남지구파견대 선전과`가 제공한 이 동요의 저자는 강소천(姜小泉)으로 되어 있다.

`산에 산에 산으로 우리 가보자/ 노래 노래 부르며 모두 가보자/ 우리들이 심어논 어린 나무들/ 얼마나 자랐나 우리 가보자/ 산에 산에 와보니 우리 와보니/ 노래 노래 부르며 모두 와보니/ 지난해에 심어논 어린 나무들/ 몰라보게 자랐구나 모두 컸구나/ 산에서는 나무들이 잘들 자라고/ 마을에선 우리들이 모두 커간다/ 어서커서 새나라의 기둥되라고/봄볕도 따사하게 비쳐 줍니다`.

12연(聯)으로 구성되어 있는 `자라는 대한`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속에서도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이 꿈을 잃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지금까지 강소천 선생의 월남 후 첫 작품이 `자라는 대한`이라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 작품의 정확한 발표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윤석중 선생의 회고록 `동심을 지킨 아동문학가들`에 "대전일보에 `자라는 대한`이라는 강소천의 동요가 실렸다"는 기록을 토대로 강소천 선생이 육군772부대(정훈부대)에 근무했던 시기인 1951년 4월 이후로만 추정하고 있었다. 이번 대전일보의 사료 발굴을 통해 `자라는 대한`의 발표시기가 1951년 3월28일이라는 게 확인되면서 강소천 선생이 대전에서 육군772부대에 근무했던 시기도 1개월 이상 앞당겨지게 됐다.

강소천 선생의 아들인 강현구(55)씨는 "선친께서 생전에 작품리스트를 꼼꼼하게 정리해놓으신 만큼 1950년 월남 후 첫 작품이 `자라는 대한`이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신문에 게재된 내용만 스크랩을 해놓으셔서 정확한 발표 날짜를 몰랐다"면서 "올해가 아버지 탄생 100주년인데 대전일보에서 큰 선물을 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강소천 선생이 대전일보에 `자라는 대한`을 발표한 뒤 당대 아동문학의 쌍두마차인 윤석중 선생과 강 선생이 대전에서 극적인 조우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대전 진잠에서 피란중이던 윤석중 선생이 강소천 선생의 작품이 대전일보에 게재된 사실을 알고 곧바로 육군772부대(옛 동양백화점 맞은편)를 찾아가 두 거장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동문학가 서석규(83)씨는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두 거장은 6.25전쟁 발발 20여년전부터 교류를 해오긴 했지만 작품만 왕래했을 뿐 실질적으로 만난 것은 `자라는 대한`이 게재된 이후가 처음"이라면서 "두 분이 대전에서 만난 뒤 교류의 폭이 확대되면서 한국 아동문학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한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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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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