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만나다 -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

김성근 감독의 대전일보 창간 65주년 축하 메시지.
김성근 감독의 대전일보 창간 65주년 축하 메시지.
김성근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를 찾은 지난 20일은 한화가 시즌 첫 6연패를 기록하고 있던 상황. 계속된 부진 때문인지 예정시간보다 비디오 분석이 길어지고 있었다. `냉정한 승부사`라는 김 감독의 평소 이미지가 떠오르며 혹시 인터뷰 역시 딱딱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도 잠시, 감독실로 들어가기 전 한화이글스 관계자들이 귀뜸 해준 것처럼 실제 만나본 김성근 감독은 평소 상상하던 것과 달리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한 평생을 야구만 생각하며 살아온 `야구 장인`답게 야구와 한화이글스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잘 갈무리되어 있던 단호함이 비쳐졌고, 최근의 부진에 대해 리더로서 느끼고 있는 무거운 책임감도 엿볼 수 있었다.

대담 = 한경수 취재2부장

먼저 치열한 5위 싸움이 진행 중인 이번 시즌에 대한 자체 평가를 부탁했다.

수 년간 이어진 암흑기에서 탈출해 시즌 후반까지 가을야구 진출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지만 김성근 감독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시즌 전부터 어려웠던 상황을 이리저리 잘 넘겨왔지만 지금이 가장 어렵다. 마지막 스퍼트를 해야 하는데 최근 경기에서 투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현재 살림을 가지고 팀을 잘 꾸려가는 것이 내 역할인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며 "시즌 초반 팀의 기둥 역할을 해야 하는 투수들이 떨어져 나갔다. 올라간 팬들의 기대만큼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어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야신`의 한수는 무엇일까. 김 감독은 "상황에 따라 방법은 다르게 적용할 수 있지만 결국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어떻게 쓰냐의 문제다. 시즌 초반에 비해 이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다. 전력에 여유가 있는 팀이라면 길이 여러 갈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 시즌 우리에게는 오직 박정진, 윤규진, 권혁 한가지였다."며 "지금은 그 길 하나마저 없어졌고, 그 결과가 연패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즉 선수를 정확한 순간 필요한 포지션에서 사용하는 것. 이는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최선책인 동시에 김성근 감독을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오랜 원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리더의 냉정함이 필요하다.

김 감독은 "똑같은 위치, 똑같은 시각으로 선수를 봐야지 선수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된다. 어떤 선수가 더 좋을 수는 있어도 마음 속에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선수의 성격에 표현방법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은 항상 같은 원칙"이라며 "물론 감독임기가 끝나면 다르다. 그때는 리더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이기 때문에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장난도 친다. 하지만 감독 재임 중에는 리더로서 조직을 끌어 가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힘든 일이다. 선수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고 챙겨주고 싶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조직이든 파벌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리더는 냉정해야 하고, 냉정함은 구성원에 대한 애정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직원들과의 관계에서 냉정함을 지키는 리더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특히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을 차별과 싸워온 인물.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이끄는 선수단에서마저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에게는 자신보다 중요한 `야구`가 있었다.

김 감독은 "저는 평생을 내 일에는 충실하지만 옆에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살았다.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오는 과정에서 주위에서 나를 멀리 하기도 하지만 의식한 적은 없다. 순간순간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쓸 틈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기가 맡은 일 속에 모든 걸 던지고 결과가 안좋으면 내가 책임지면 된다. 남한테 맡기고 남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이 가장 싫다. 감독의 위치는 떠날 때 손가락질 받더라도 아쉬움이 없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야구를 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변화도 있었다. 한화 부임 전까지 프로야구 무대를 떠나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에서 보낸 3년이 야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김 감독은 "어느 팀을 맡아도 배우는 것이 있다. 고양에서 경험한 것은 내 기준에 구성원들을 맞추는 것이 아닌 구성원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라며 "3년 만에 돌아오니 한국 야구의 수준도, 팬들의 열기도 한층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고양에서 배워온 경험들이 한화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김 감독의 말처럼 그가 프로야구 무대를 떠나있던 기간 동안 야구팬들의 열기는 몰라보게 뜨거워 졌다. 특히 대전의 경우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야구 열기로 가득하다. 이처럼 열성적인 대전 야구팬들의 열기가 때로는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김 감독에게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김성근 감독은 "한화이글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 프로야구 초창기였던 OB시절 대전에서 느꼈던 야구에 대한 관심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전 속에 한화이글스가 있는지, 한화이글스 속에 대전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면이 부담감이 크다. 특히 연패에 빠지기라도 하면 이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압박이 어마어마하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많은 지역을 돌며 감독을 해봐도 대전팬들의 응원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와 닿는다. 팬 여러분이 진심으로 야구를 즐기고 있어서인지 나와 굉장히 가까운 느낌이다. 과거와 비교해도 열기가 대단하다. 처음 대전과 인연을 맺었던 OB베어스 시절에는 코리안 시리즈에 올라가야 대전 야구장이 겨우 만원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18번째 매진을 기록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얼마나 모든 것을 걸고 목표를 위해 부딪쳤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전 팬들을 보며 천천히 뜨거워진 이 야구 열기를 식혀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을 갖는다"고 고백했다.

김성근 감독이 남다른 책임감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대전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OB가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기 직전인 1984년 프로야구 감독으로 데뷔했다. 대전일보가 올해 창간 65주년이 됐으니 그 절반은 대전에서 시작한 제 프로야구 감독 인생과 함께한 셈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재일교포 야구단 소속으로 처음 고국 땅을 밟았던 1959년 대전역 인근 공터에서 관중석도 없이 줄로 펜스를 치고 경기를 했고, 이듬해에는 동아대 소속으로 지금 대전구장 위치에 있던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며 "내 야구 인생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대전에서 좋은 마무리를 해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전 야구팬과 대전일보 독자를 위한 인사를 부탁하자 김성근 감독은 "대전에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정도 열기가 있는 곳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충청도인들이 그동안 안에 품고 있던 어마어마한 에너지에 매일 놀라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심인 대전에서 프로야구 감독의 처음과 마지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그동안 우리 프로야구에서는 없었던 팬들이 원해서 부임한 감독으로 취임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며 "경기에 진 날도 늦은 시간까지 야구장에서 기다리며 선수단을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보며 놀라움과 죄송함을 느낀다. 이처럼 대전 야구팬 여러분이 전해주신 열기가 우리 선수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그동안의 선전이 가능했다고 믿는다. 앞으로 남은 기간 더 성원해 주신다면 그 열의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정리=오정현 기자·사진=빈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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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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