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풍경이다. 언뜻 봐도 노동의 즐거움이 넘친다.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민초들의 삶이 어디 그렇겠냐마는 그림 속 인물을 보고 있으면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는 필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게다.

긍재 김득신(1754-1822)의 `대장간(18세기)`이다. 대장간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대장간`과 두 점이 전해진다. 긍재가 단원 그림을 보고 본떠서 그렸다고 전한다. 단원과 아홉 살 차이로 어려서부터 가까운 사이였으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긍재의 삼촌이 단원의 스승이기도 하다. 화맥이 얽혀있다 보니 이런 짐작이 가능해진다. 긍재의 `대장간`은 단원의 대장간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 대장간 전경과 화덕, 사람배치에 구도까지 닮아 있다. 그럴것까지는 없지만 원작과 짝퉁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발디딤 풀무와 풀무질을 담당하는 소년, 총각일꾼과 중년 일군의 동세, 불꽃모양의 수건까지 똑같다.

다른 점을 찾자면 긍재의 대장간 표정이 밝다는 점과 단원의 대장간에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원작보다 작품의 격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작품 모두 풍속화 특유의 멋스러움과 서민적인 맛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붉게 달궈진 쇠덩이를 집게로 모루 위에 대 주고 있는 사람이 주인 격인 우두머리 대장장이다. 깔끔한 차림의 옷 맵시와 균형이 잘 잡힌 외씨버선이 그 증거다. 대장장이 입이 벌어진걸 보면 노동요를 부르는 모양이다. 일꾼들의 흥겨운 자세와 미소 가득한 얼굴 표정은 입담을 섞어 즉흥적으로 풀어내는 노동요 가락 탓일 게다. 노동요는 메질의 박자 역할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질하는 두 일꾼의 동작이 꼬여 달군 쇠를 제대로 두드릴 수가 없다. 율동감과 생동감이 넘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장장이의 시선이 특이하다. 달궈진 쇠를 보고 있어야 하는데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몸에 베인 일이라 안 봐도 맞춰 줄 수 있을 테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장간 풍경을 구경하는 관객을 의식하고 있음이다. 화집이나 인터넷을 통해 두 작품을 찬찬히 비교해서 보면 그림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할 것이다. 긍재의 집안은 명문 화원 가문이다. 아버지, 아들, 동생, 삼촌, 외손자 등 화원만 여덟 명이나 된다. 화가 군단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