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조금 늦게 다른 길을 돌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이 11년 전이다. 첫 출근 전날 잠 못 이루며 오래 기다린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었다. 첫날 아이들 앞에 선 난 눈앞이 캄캄했다. 개학식에서 간단하게 소개를 마치고 아무 준비도 없이 교실에 들여보내졌다. 30명의 6학년 아이들은 `어디 보자`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3월 우리 교실의 규칙은 자리는 오는 대로, 급식실에서 마음대로 앉기, 과학실은 쉬는 시간 중에 알아서 가기 등 한마디로 `마음대로`였다. 선생님이 그저 간절히 되고 싶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적었던 것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학년부장 선생님께 달려갔다. 그때 까지 관리자들께 싫은 소리 들으며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던 부장님이 그때부터 나의 멘토가 되어주셨다. 교실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아이들도 오히려 적절한 규칙을 더 반기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내가 바라던 친구 같은 소통은 끝내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끌려다니는 교사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여자아이들의 무리짓기, 남자아이들의 끊임없는 말썽은 나를 힘들게 했고 아이들에게 점점 사무적인 교사가 되어갔다. 그 아이들에게 난 무섭지도 않은데 편하지도 않고 귀찮은 감동 없는 교사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첫 제자에 대한 훈훈한 기억들을 이야기 할 때면 그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얼마전 길을 가는데 한 멋진 청년이 쫓아왔다. 어깨를 치며 `선생님` 하는 데 낯익은 청년이다. `선생님 저예요 ○○초6학년 ○○요, 저기 가게서 선생님 보고 쫓아왔어요.` 나의 첫해 제자였다. 선생님 보고 쫓아왔다는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전에도 종종 그 때 아이들을 보곤 했었는데 그 날의 기분은 달랐다. 그제서야 그 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첫사랑들아, 서툴러서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11년 전 나의 각오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품었던 선생님의 모습으로 발전되고 있다고 믿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과 1년을 지내면 항상 아쉽고 미안함이 남는다. 그런 미안함이 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미안하게 1년을 열심히 선생님 해야겠다.

신소희 보령 남포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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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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