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이라고 하여 풍악을 울리면서 보내기에는 어딘가 찝찝하다. 광복 바로 전날에 군사분계선 남쪽에 지뢰를 묻고 침략행위를 감행한 북한의 소행에 분노가 치밀어서다. 일본 아베 총리가 지니고 있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우주인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엉뚱하게 왜곡되어 있어 여간 심사가 뒤틀리지 않아서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북한에 대해서는 전방 GP에 대고 박격포를 한방 쏘고 싶은 심정이고 일본에 대해서는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낱낱이 파헤쳐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분단 70년이 뼈아프게 지나가고 광복 70년이 허허롭게만 생각되는 이유다.

광복 70년은 우리의 민족시인 윤동주의 사망 70주년이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마지막 절명시 한편 남기지 못한 채 외마디 절규와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만 27세 1개월. 일본 도지샤 대학 영문과 학생으로 재학중 치안유지법위반으로 경찰에 끌려간 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체가 되어 형무소 문밖으로 나와야 했다. 일제가 비밀리에 실행했던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은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뿐이다. 일본이 자행한 악랄함의 극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일본은 숨기고 있고 한국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이 생체실험을 하기 위해 만든 부대가 있다. 731부대다. 이 부대는 처음부터 731부대는 아니었다. 일본이 1932년에 만주국을 세우고 나서 관동군이 관할하는 하얼빈에 통칭 이시이(石井四郞)부대라고 불리우는 방역급수본부를 만들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다가 1941년 태평양전쟁과 함께 막대한 투자와 함께 만주 제731부대가 생겨난 것이다.

일제 때에는 쉬쉬하고 지냈던 생체실험의 진상이 밝혀진 것은 종전이 된지 한참 후인 1949년 하바로브스크에서 열린 극동 군사재판에서였다. 그 실험에 종사했던 일본인들의 증언에 의해서였다.

일본군은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세균전을 감행할 목적으로 이 부대 안에 병리연구, 약리연구, 동상연구와 같은 연구 팀을 만들고 생체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는 식물이나 동물을 실험원료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재료료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통나무 즉 마루타(丸太)라고 불렀다. 생체를 생체로 보지 않고 통나무로 인식하면서 실험하자는 뜻도 되고 생체를 일컫는 암호이기도 했다. 그 통나무는 어디서 구하는가? 주로 항일운동을 하던 각국의 애국운동가들을 잡아 마루타로 삼았던 것이다. 주로 러시아인 중국인 몽골인 포로들과 조선의 항일애국지사들이 주 대상이었다. 총인원 3850명이었다고 한다(김창권).

1945년 일본 관동군은 항복하기 전 731부대의 비밀을 은폐하기 위해 세균탄이나 실험용 시설들을 파괴하고 일본으로 반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것도 종전후 하바로브스크에서 열린 극동 군사재판에서였던 것은 물론이다. 패전이 임박하자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400여명에 달하는 피실험대상자들을 독가스로 살해 하였다. 훗날 문제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서류나 극비자료들은 스스로 챙겨 일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동경 전범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았다. 미 점령군과의 암묵적 거래의 결과였다는 얘기만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까마득하게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일제 36년간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착취를 당하고 또 유린을 당했는지에 대한 백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 `일본 관동군 731부대 조선인 희생자 진상규명위원회회장`임을 자임하고 나선 김창권씨는 "한국인 마루타로 알려진 숫자만도 25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찌 그 뿐이랴! 윤동주 시인도 그중의 한사람이 아니었던가!

지금부터라도 마루타의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 인류의 부끄러운 역사로 남지 않도록 정리해 두어야 한다.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어떻게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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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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