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백석을 찾아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오늘날 백석은 잘 생기고, 새로움을 쫒고, 여인들을 사랑했던, 지극히 낭만적인 시인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백석은 시 때문에 남과 북과 만주를 떠돌았던 지극히 절망스러운 시인이었다.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인이 가장 낭만적인 시인으로 기억되는 오늘날로부터 백석의 코미디는 시작된다.

지난 14일-15일 이틀 동안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으로 선보인 연극 `백석을 찾아서-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철저한 교양으로 나아간다. 백석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백석을 알려내려고 한다. 그의 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렇게 탄생한 시가 어떻게 소멸했는지. 도시가 불바다가 되는 와중에도 고요한 돈강을 번역하던 시인이, 먼 훗날 자신이 쓴 시를 왜 스스로 불태웠는지. 그를 그렇게 굴린 그보다 큰 어떤 것이 대체 무엇인지.

연극은 백석이라는 사람이 아닌 백석이라는 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잘생긴 시인을 떠나 여자를 사랑했던 시인을 떠나 그냥 시인이었다. 시를 사랑하던 백석이 왜 시를 쓰지 않았는가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살았다.

백석은 친일 예술정책에 시달리기가 싫어서 만주로 떠난 사람이었다. 그가 해방 후 북에 남은 이유는 단지 고향이 그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선택으로 그는 남과 북 양쪽에서 외면 받는다. 북에서는 쓰는 것을 금지당하고 남에서는 읽는 것이 금지되었던 이 불쌍한 시인을 어쩔 것인가. 그는 그를 굴리는 그 커다란 어떤 것에 저항하지 못했다. 시를 버리는 것으로 작은 몸부림을 쳤을 뿐이었다.

그는 85세까지 산다. 그의 시는 50년 전에 죽었고 그의 몸만 50년을 더 살아간다. 그의 가족과 그의 자손은 번성했지만 그의 시는 대가 끊겼다. 나타샤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마가리에 가려던 시인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질화로의 재만 뒤적이다가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제 3인공위성을 타러 간다.

50년이 지나서 그의 시를 소리내서 불러준다. 아니, 노래한다. 판소리로 민요로 정가로 트로트로 합창으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노래한다. 우리는 백석을 사랑해야 한다. 그의 낭만 뿐 아니라 절망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시를 다시 쓰려고 삼수갑산과 백두산을 오가는 그의 절망에 울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쓴 시들을 불쏘시개에 넣고 씨익 웃는 그의 낭만에 웃어야 한다. 백석은 낭만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어야 한다. 백석은 낭만과 절망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희극으로. 웃음과 눈물의 경계에서 솟아나는 코미디로 부활해야한다. `백석`은 그 부활의 시작이다.

오세혁

극단 걸판 작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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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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