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즈음 19대 총선거를 바로 앞두고 `정치 1번지` 여의도 국회는 잔뜩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치권의 선거구 획정 작업이 갈 지(之)자를 그리고 있는 시점에 농·어촌 선거구 통·폐합을 반대하는 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 경찰은 온종일 국회 주변을 에워싼 채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국회 앞은 마치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의 그것처럼 살풍경스런 모습이 연출됐다.

지역에서 올라 온 주민들은 통폐합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연일 항의 집회를 가졌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일부 시위대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간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국회 진입을 시도해 연행되기도 했다. 해당 지역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를 통폐합하려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선거구 획정 문제로 국회는 온통 난리였던 것이다.

그 해 2월 말 여야 의원들이 선거구 획정을 논의하는 정개특위 회의실은 난장판이 됐다. 지역구 통폐합 대상 의원이 회의장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동료 의원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죽이냐"는 항의와 의원 들간에 드잡이 사태까지 빚었다. 보좌진끼리는 주먹다짐이 오갔다. `한솥밥`을 먹었던 의원들 간의 이런 민망한 광경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됐다.

19대 국회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은 이런 깊은 생채기와 함께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세종시를 포함해 지역구 의석 3석을 신설하고 영·호남의 각 1석씩을 줄이는 선거구 획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켰지만 `자를 대고 금 긋는 격`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선거구 획정은 당시 총선이 불과 50일을 앞두고 이뤄졌다. 여야의 정치력 부재와 당리당략적 행태에 대한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어떠 했을까. 정개특위 산하 자문기구 성격의 획정위의 결과는 휴지조각과 다름 아니었다. 자문은 자문이었을 뿐, 현실은 따로 놀았다. 획정위 보고서는 참고 사항에 불과했고, 여야의 셈법에 따라 영·호남의 의석수 샅바싸움으로 허송세월만 했다. 이 과정에서 충청권의 획정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음은 물론이다.

당시 선거구 획정 논란은 크게 두 가지의 교훈을 남겼다. 현역 의원들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획정기구의 필요성이 그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합리적인 획정안이 도출된다고 해도 무용지물에 불과함은 18대 국회는 물론이고 그 이전의 국회가 방증한다.

역대 국회와 달리 20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을 다루게 될 선거구 획정위가 얼마전 중앙선관위 산하에 독립기구화 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과거에 대한 반면교사로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획정위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아 가는 형국을 보면 여간 우려스러운 게 아니다. 획정위 일정을 보면 공청회와 여론 수렴을 거쳐 10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국회는 11월 13일까지 획정안을 의결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런 숨가쁜 일정 때문에 획정위는 국회 정개특위에 13일까지 획정 기준을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작금 선거구 획정 논의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공천 방식과 선거 제도를 놓고 입씨름만 하며 가이드 라인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논란으로 `부지하세월`이다. 무엇보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 기준과 의원 정수를 획정위에 통보해줘야 함에도 차일피일 미뤄져 획정위 측은 애를 태우고 있다. 이번 획정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심초사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국회에서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지난 국회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선거구 획정도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안이 마련된다면 정치권이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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