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에게는 눈가리개를 씌운다. 기수의 유도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게 경주마의 시선을 가두기 위함이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을 보면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뉴스를 통해 대청대교 관련 보도를 접했다. 수천억 원을 들여 교량을 만들었지만 연결도로에 대한 고려 없이 추진해 준공은 했지만 당분간 이용을 못한단다. 당초 기대한 지역 경제 파급효과라는 통합적 효과는 고사하고, 차량 통행 기능조차 못 할 처지다. 연결도로와 주변 부대공사 완료까지 상당기간 방치돼야 한다. 상당기간이 아니라 연결도로 공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예 사용을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리 주변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다.

경상남도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공사비 100여억 원을 들여 준공한 교량에 수년간 차량이 다니지 못했다. 접속도로와 다리의 높이가 1.8m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교량을 건설하면서 접속도로에 대한 대안도 없이 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이제는 기존 접속도로를 그대로 두고 별도의 출입로를 연결하는 공사를 추가 비용을 들여 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위 두 사례뿐만이 아니다. 모 일간지에서 최근 몇 년간 기획 보도한 사례를 보자. 또 다른 경상남도의 한 지자체에서는 국내 최장 보행자 전용다리를 개통했으나, 인근에 다른 교량이 있어 이용자가 많지 않은데다 도시철도 연장선이 다리 위를 지나가도록 계획돼 있어 철거해야 할 처지에 있다. 공간적, 시간적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결과다.

A광역시에서는 천변 생태공원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생태 공원 내 산책길에 매연과 악취가 있다. 조성하고자 하는 산책길은 원래 지름길이라도 이용하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바로 옆에 영남권 최대 규모의 염색공단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객이 있을 수 없다. 한번만 고개를 돌려 봐도 됐을 일이다.

B시에서 철도 위를 가로질러 두 개 동을 잇는 육교를 지난해 준공했다. 그러나 이용자는 보기 힘들다. 건너편으로 가려면 철로를 건넌 뒤 왕복 8차로 도로를 또 가로질러야 하지만, 도로를 건너려면 육교에서 내려가 횡단보도까지 400m쯤 더 걸어가야 한다. 이용객이 없는 이유다.

C군에는 무게 43.5톤짜리 초대형 무쇠 가마솥이 있다. 기네스북에 올려 관광객 이목을 끌 의도였다. 보러 오는 이도 없다. 알고 보니 호주에 더 큰 그릇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 더 큰 그릇이 있는지 왜 미리 알아보지 못했는지 아쉽다.

위의 사례 외에도 미리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왜 이러한 사례들이 반복될까.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 마냥 무작정 앞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사업의 필요성이 낮거나 없어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당초 목표한 기대효과를 거둘 수 없는데도 추진하고, 기존사업과의 관련성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추진하고, 사업목적이나 주변의 여건이 변화하여 사업을 실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데도 그대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게이트웨이 리뷰 시스템(Gateway review system)이라는 절차를 통해 당초에 해당사업으로부터 기대한 효과가 사업 진행 중에도 여전히 달성가능한지를 사업 진행 매 단계에서 점검한다. 사업 자체의 여건뿐만 아니라 해당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주변 정황들을 살펴보고, 사업의 중단 혹은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1:10:100의 법칙이란 게 있다. 생산과정중 생산자가 불량을 발견했을 경우 즉각적으로 고치는데는 1의 비용이 들지만, 불량품이 기업의 문을 나서면 10의 비용이 들며, 이것이 고객의 손에 들어가 클레임으로 연결되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법칙이다. 기획단계에서의 1의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잘못이 완공 후에는 100이 아니라 그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미리 미리 주변을 둘러보고 추진하는 여유와 지혜가 필요할 때다. 장철기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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