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제32사단 타임캡슐 개봉식 가보니

8일 오후 1시 30분,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육군 제 32사단 역사관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역사관 앞에 조성된 작은 광장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아직 식이 시작되기 전임에도 다들 상기돼있었다. 더운 날씨에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모두 감회가 새로운 듯 감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들고 `상호존중과 배려의 선진 병영문화 정착 선포`라는 글귀가 쓰인 비석의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모두 동상 아래 묻은 타임캡슐을 꺼낼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2사단은 8일 오후 1시 `상호존중과 배려의 선진병영문화 정착 선포 10주년` 행사를 가졌다. 당시 부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성공적인 선진 병영문화를 정착시킬 것을 선포하며 2005년 8월 10일 땅에 묻은 타임 캡슐을 꺼내는 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10년 전인 2005년, 32사단은 전군에서 처음으로 `상호 존중과 배려(상존배)`운동을 시작했다. 한국 병영문화의 고질적인 적폐였던 신체적·정서적 가혹행위를 개선하고 선진병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장병들은 상대방에게 존칭어 사용하기, 먼저 인사 건네기, 칭찬하고 봉사하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확산시켰다.

이처럼 10년 간의 상존배 운동을 통해 32사단은 선진병영의 첨병으로 도약했다. 간부와 병사 등 모든 부대 구성원이 존중과 배려문화 확산을 위해 합심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도 함께 상존배 문화 확산을 다짐했던 전우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32사단장으로서 상존배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정두근 상호존중과배려운동본부 총재는 "옛 전우들이 계급을 떠나 이렇게 정을 나누는 인연이 된 것이 정말 감격스럽다. 10년 전에 무엇을 묻었는지 나 역시 궁금하다"며 "병영 악습은 일재 문화의 잔재이기 때문에 뿌리 뽑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상존배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 타임캡슐을 꺼내며 상호존중 문화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고 정 총재와 당시 주임원사 등이 삽을 들었다. 정 총재가 첫 삽을 떴다. 이들은 천천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뜨거운 날씨 탓에 연신 땀을 훔쳤다. 다행히 땅이 단단하지 않아 쉽게 팔 수 있었다. 그렇게 수 분을 파내려가다가 이윽고 삽 끝에 뭉툭한 타임캡슐이 걸렸다.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땅에서 끌어올려진 타임캡슐은 약 40㎝ 길이에 지름 15㎝의 크기의 원통형 기둥이었다. 쇠로 만들어졌고 단단하게 밀봉돼 있었다. 육각 볼트를 사용해 단단하게 밀봉한 탓에 렌치가 필요했다. 곧 렌치를 사용해 뚜껑을 열었다.

캡슐 안에는 당시 상존배 운동을 실시하며 사용한 책자와 교육용 CD, 상존배 우수 장병들에게 수여한 메달,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참모들이 남긴 글 등이 들어있었다. 각 물품을 뜯으며 설명하던 정 총재는 캡슐을 묻을 당시가 기억나는 듯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그는 자신이 썼던 글귀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정 총재는 "당시 내가 이렇게 썼었다. `백룡 전우의 절대적 지지와 성원으로 엄청난 산고의 아픔을 이기고 태어난 옥동자이기에, 강군 육성과 선진조국 건설의 효자 노릇을 기대하고 확신하며, 그 중심에 오늘의 백룡인들이 우뚝 서 있으리라!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이라고 말이다"라며 "우리 전우들의 힘으로 선진 병영문화가 서서히 정착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타임캡슐 개봉 행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상존배 기념식이 시작됐다. 행사는 김명중 32사단 작전참모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상존배 운동 경과보고, 추억의 동영상 시청, 축하 메시지 시청, 축하 공연 등이 이어졌다. 이정기 32사단장은 환영사를 통해 "정 총재님의 병영문화 혁신이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상존배 운동은 병영문화 혁신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그 발판을 딛고 오늘날 우리 장병들 사이에도 서로 배려하면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이 됐다. 정 총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선포식 당시 충남도지사였던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은 축사에서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일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장병들에게 군대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기초를 상존배 운동을 통해 가르친다면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것"이라며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만이 병영문화를 바꿀 수 있고 이 사회를 밝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총재는 단지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그는 "당시 캡슐을 묻은 것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늘 행사도 단지 1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이 운동이 결코 의미없지 않은, 우리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사회운동의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장병들에게는 군 생활을 `무덤`이 아닌 삶의 지혜를 배워가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군 생활은 어디 가서도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며 "삶의 지혜와 함께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배운다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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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부터)육군 제 32사단은 8일 '상호존중과 배려의 선진병영문화 정착 선포 10주년'행사를 가졌다. 당시 32사단장이었던 정두근 상호존중과배려운동본부 총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타임캡슐을 들어보이고 있다. 내빈들이 타임캡슐이 묻힌 땅을 파고 있는 모습. 타임캡슐의 뚜껑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  전희진 기자
(위쪽부터)육군 제 32사단은 8일 '상호존중과 배려의 선진병영문화 정착 선포 10주년'행사를 가졌다. 당시 32사단장이었던 정두근 상호존중과배려운동본부 총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타임캡슐을 들어보이고 있다. 내빈들이 타임캡슐이 묻힌 땅을 파고 있는 모습. 타임캡슐의 뚜껑을 열고 있는 모습이다. 전희진 기자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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