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정부청사는 초비상이 걸렸다. 다음날 예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개의 하루를 앞두고 전격 취소됐기 때문이다. 민생법안 처리에 다걸기해 온 정부로선 곤혹스런 일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 배경을 살피느라 안절부절 못했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자신이 발의한 특허관할집중법률안에 대해 법무부와 일부 의원이 딴지를 걸자 초강수를 던졌다. 그는 전날 법사위 제2 소위에서 법안 심의를 계속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자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 법안은 특허권 등에 관한 침해소송 항소심 관할을 특허법원이 전속토록 하자는 취지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국 23개 고등법원 및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관할하던 특허 재판을 대전특허법원이 전담한다. 최근 IT 분야는 물론 자동차와 섬유·철강·화학 등 기술분야 특허권과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권, 품종보호권 소송이 폭주하는 추세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침해소송의 권리 보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특허법원이 있는 대전에서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권리의 유·무효를 묻는 심결취소소송의 경우 특허법원이 관할하는 이원화 체계라는 점도 법안 처리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진국에서는 특허소송 관할을 연방순회항소법원(미국)이나 지적재산고등재판소(일본)에서 맡는다. 유럽연합(EU)은 침해소송과 무효소송의 관할을 집중하는 공동특허법원 출범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세계특허(IP) 허브국가 추진위 공동대표인 새누리당 정갑윤·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이 비숫한 내용의 법안을 공동 발의해 통합 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중화가 되면 특허소송제도의 선진화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면서 대전은 과학기술도시를 넘어 지적재산권 분야의 세계적 허브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대형 법적분쟁 사건이 대전특허법원으로 집결하고, 세계적 로펌과 관련 기관이 입주하게 돼 지역경제 발전에 파급 효과가 크다. 특허도시로서 대전의 위상이 획기적으로 달라진다는 얘기다. 각각 지적재산권 특허와 과학기술법 분야 특성화를 추진 중인 충남대·충북대 로스쿨에 대한 시너지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대전은 93엑스포 이후 눈에 띄는 국제행사를 열지 못했고, 지역발전의 전기가 될 기관을 유치하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20년 넘게 대전의 존재감이 미미했던 건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한 이유다. 대전에는 특허법원뿐 아니라 특허청과 특허정보원, 특허연수원이 입지해 특허 거점도시 조건을 갖췄지만 갈 길이 멀다. 이 위원장의 분투에도 특허법원 집중화 관철은 녹록지 않은 과제다. 무엇보다 수도권을 중시하는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깨부숴야 가능한 일이다.

관건은 정치력에 있지 않을까. 몇 달에 걸쳐 폭탄주를 고리로 변호사회와 변리사회의 반대 여론을 무마했다지만 정치권 일각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제2의 세종시처럼 인식하고 순순히 내줄 수 없다는 사고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 맞서 415일간 매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원안 추진을 촉구하는 전투력을 보여줬다. 2005년에는 학교용지부담금환급특별법을 통과시켜 26만여 명이 5000억 원을 돌려 받는 길을 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맞서 소급적용이 안 되는 법체계를 뚫고 얻은 결실이다. 최근에는 얼마 전 폐기된 국회법 개정안보다 수정 권한을 강화한 이른바 `박근혜법` 통과 결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우선순위로 보건대 특허법원 집중화가 화급하다. 충청권 의원 몇몇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법사위에 지역연고 의원이 전무한 데서 보듯 외곽 지원은 쉽지 않다. 명분이나 당위성, 전투력만으론 한계가 있다. 논리를 더욱 가다듬어 거듭 설득하는 강온 전략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유성이 지역구인 이 위원장은 지방대 출신으로 전관(前官) 경험이 전무한 율사 이력의 소유자다. 법조계 주류와 거리가 있지만 법사위원장을 맡아 소신과 능력을 보여줬다. 이제 한 차원 다른 전장(戰場) 한 가운데 섰다. 어떤 정치력으로 특허법원 집중화를 이루어낼지 거의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렸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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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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