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백미, 주심포양식과 배흘림기둥.
무량수전의 백미, 주심포양식과 배흘림기둥.
매미소리가 가득했던 날이었다. 조금만 발을 디뎌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요며칠 계속된 장맛비에 찾아 온 끈적함이었다. 덕분에 수풀의 색감은 짙어졌다. 잎사귀마다 스며든 빗물은 여름날에만 만날 수 있는 숲을 만들었다. 뿌연 하늘에 대비되는 묵직한 녹빛이다.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는 화려한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 한껏 물을 머금었을 것이다. 기자는 소백산 기슭, 무량수전이 자리한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를 오르고 있던 참이었다. 한 손에는 책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가 들려 있었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저자 고(故) 최순우 선생이 책에 담아낸 말이다. 그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에 감사해 했다. 부석사에 대한 감동을 쏟아내기 이전에 먼저 부석사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덕분에 당연히 발걸음은 바빠질 수 밖에 없었다. 기대감이 한 층 고조돼 있던 차였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부석사로 들어섰다. 일주문까지는 양 옆으로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손님을 맞이한다. 사실 가을이 돼서야 더욱 멋들어지는 나무들일텐데 한여름 우거진 청록도 근사함을 선사한다. 일주문을 지나자 바닥에서 자갈소리 들려 온다. 자연스레 난 길에 자갈을 조금 깔아뒀다. 산길의 정취가 있다. 길도 따로 구분 짓지 아니했다. 길 옆으로 나아가면 그 곳이 산이며 숲이다. 매미소리는 더욱 진해졌다. 멀리서는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이 메아리 친다. 느린 걸음으로 야트막한 경사를 올라 천왕문을 지났다. 부석사다. 예상보다 꽤나 경사가 있었다. 구부렸던 허리를 펴 산세를 가늠해 봤다. 소백산은 부석사를 제 자식인 양 둥글게 품었다. 넓은 품보다 깊게 품은 형상이다. 한 단씩, 석축으로 이뤄졌다.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한 층이 되고 또 오르면 한 층이다. 가운데 계단을 기준으로 석축의 양쪽은 건물들이 균형적으로 자리했다. 보호각, 취현암, 응향각 등의 위치가 그렇다. 주위를 둘러 싼 소백산과 차곡차곡 정리된 듯한 건물의 위치는 의젓해 보이기 까지 하다.

범종각을 지나자 쪼르르 약수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온 몸은 땀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약수물을 떠 세 바가지를 연거푸 마셨다. 시원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눈 앞으로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떠나가는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고 최순우 선생은 글에서 초겨울 안개비가 내리는 날 이 곳을 찾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또한 안개비라고 여기기로 했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드디어 무량수전에 다다렀다.

호젓하고 정갈하다. 정교한 매무새가 돋보인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이뤄져 있다. 한 쪽으로 삐뚤어지지 않은 균형감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창건됐지만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중창됐다. 국내 목조건축물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주심포 양식은 간결하면서도 웅장하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사뿐히 오른 처마 끝은 경쾌하다. 문창살, 문지방은 모자란 것이 없으면서도 화려하지 않다. 드러내지 않고 조르지도 않는다. 필요한 만큼의 멋이다. 필요의 미(美)다.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조미료를 일체 배제한 자연의 말끔한 맛이다. 햇볕에 바싹 말린 빨랫감의 무향이다.

무량수전의 멋은 하나 더 있다.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 배흘림기둥이다. 기둥머리가 34㎝, 중간 배흘림이 49㎝, 기둥밑이 44㎝로 기둥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록 넓어졌다가 다시 좁아지는 구조다. 사람으로 치면 어깨가 좁고 배가 나온 체형이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났다. 건물 전체에 너그러움이 전해진다. 단연 으뜸으로 손 꼽히는 목조건축물이다.

무량수전을 등지고 안양루를 바라보자, 뒤로 보이는 겹겹이 곱게 늘어진 산등성이들은 장관을 연출했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 봉우리는 물결이 돼 눈으로 들어왔다. 그제서야 왜 책의 제목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인지 알 것 같았다. 안양루 옆에서 바라보는 풍경보다 무량수전을 바로 뒤 등지고 바라보는 것도 펼쳐진 주경과 어우러지는 안영루의 참맛을 경험할 수 있다. 등에 서린 땀이 씻겨나가는 듯한 상쾌함이다. 때문인지 한참을 그곳에 기대 있었다. 안양루 뿐만 아니라 무량수전까지 포함해 인근을 조망하고 싶다면 무량수전 동쪽 언덕의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삼층석탑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웠다. 탑을 앞에 두고 무량수전 앞마당과 안양루를 포개 바라본다면 더욱 안락한 조형미를 느껴볼 수 있다. 이 조그마한 공간에서 자연의 어우러짐, 정갈한 균형미, 탁 트인 풍경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무량수전 옆을 돌자 부석(浮石)이 보인다. 말 그대로 `뜬 돌`이다. 바위의 아래와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 해서 붙여졌다. 이 밖에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 제 45호로 지정돼 있는 소조여래좌상도 구경할 수 있다.

부석사를 내려와 가방에 넣었던 책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찾아 다시 읽었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글·사진=김대욱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무량수전 팔작지붕.
무량수전 팔작지붕.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안양루.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안양루.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