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열사의 외 증손자가 지난 7월 15일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서 큰 절 하는 모습의 사진을 본다. 외교부와 코레일이 공동으로 주최한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가 보여준 한 장면이다. 이준은 누구이며 이상설은 누구인가?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준 열사는 분을 이기지 못해 배를 갈라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고 배웠다. 훗날에는 자결이 아니라 분사(憤死)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자결이건 아니건 열사(烈士)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는 광복 70년을 맞아 7월 14일, 19박 20일간의 일정으로 정·재계·문화계와 대학생들 200여명을 태우고 러시아 폴란드 독일 등 5개국 10개 도시를 돌며 우리의 통일의지와 민간외교를 수행하기 위해 출발한 열차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첫 번째 기착지를 독립운동의 유적지인 연해주의 우수 리스크로 향했다. 이곳 연해주라는 땅은 시베리아의 동남단 흑룡강과 우수리강 및 동해로 둘러싸인 지방으로 처음에는 중국 땅이었다. 훗날 온전히 러시아 영토로 만든 다음 러시아는 이곳 남단에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하여 군사 내지 무역기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연해주는 어느 나라 소유가 되었건 해외 망명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 유허비(遺虛碑)의 주인공인 이상설 선생은 한말 의정부 참찬의 직에 있으면서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1905)되자 을사5적 척결을 주장하면서 고종황제에게는 순국의 각오로 을사조약에 반대할 것을 상소한 기개 높은 분이었다. "폐하! 지금정세로 보아서는 을사조약을 반대한다고 해서~ 국권을 회복할 희망은 없을 것같습니다.~ 주저치 마시고 폐하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온 백성이 그 뒤를 따라 전원이 사생결단으로 왜적을 무찌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이현희)."

이후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국권을 찾지 못하면 다시는 고국땅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상해를 거쳐 연해주 불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갔던 것이다. 1906년 봄의 일이다.

1907년 6월! 고종황제는 멀리 화란의 수도 헤이그에서 제 2차 만국평회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만국의 대표들에게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알리는 밀사를 파견키로 하였다. 이때 파견된 밀사들이 이상설과 전 평리원 검사 이준과 전 주 러시아공사관의 참사관인 이위종이 아니었던가?

이들 특사 일행은 헤이그에 도착하여 의장인 러시아 대표 넬리도프(A.I. Nelidov)등을 방문하여 고종의 신임장을 제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누누이 설명하면서 회의 참석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본 대표인 고무라(小村壽太郞)의 방해공작으로 회의참석도 거절당한 채 분을 삼키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이 일을 빌미로 삼아 이등박문이 이완용과 송병준과 같은 친일각료들을 움직여 7월 20일에는 고종을 퇴위시키고 7월 24일에는 외교권을 넘어 내정 간섭권까지 가지는 `정미7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리고 8월 1일에는 드디어 군대까지 해산시킴으로써 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줄달음 쳤던 것이다. 일제는 이들 특사들을 궐석재판을 통해 거짓되이 밀사라고 사칭한 죄로 이상설은 사형선고를 그리고 나머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이상설은 1909년, 연해주의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기지를 만들고 1914년에는 최초의 망명정부인 대한 광복군정부를 수립하는 등의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하다가 1917년 3월 2일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병이 들어 사망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한 내가 어찌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몸과 유품은 불태워 강물에 흘려 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묘지는 어디에도 없다. 오직 발해의 옛터를 흐르는 "슬픔의 강"이라는 뜻을 지닌 수분하(라즈돌나야)강 언덕에 유허비만 서 있게 된 것이다(조병현).

그러나 어찌 선생이 유허비만 남겼을까! 그의 올곧은 국권 회복정신이 우리들의 통일정신으로 이어져 유라시아 특급열차가 태극기를 달고 힘찬 기적소리를 울리도록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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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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