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3김(金) 정치가 판을 칠 때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도 정권을 잡기 위해 무진 노력을 했다. 한때 국회의원 50여 석을 구가했던 자민련의 연결고리는 내각제였다. 1인 중심의 대통령제 폐해를 지적하며 내각제를 기치로 내걸고 대망의 꿈을 품었던 것이다. 그 중심에는 김종필 총재가 있었다. 권력의 분점과 지역주의 타파가 주된 논리였다. 양김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자리했던 김 총재는 추상같이 내각제 몰이를 했지만 여론은 시큰둥했다. 뿌리 깊은 지역 패권주의와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

정당은 궁극적으로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이념과 철학, 정체성을 같이 하는 인사들이 이합집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국회의원들이 모여 대권 후보를 내게 되고, 집권을 하게 되면 여당, 패배하면 야당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순환구조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가 미약할 경우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게 되고, 대권 후보를 내지 못하면 `불임 정당`이라는 오명이 씌워진다. 그런 정당은 이탈자가 생기고, 소멸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 냉엄한 정치 현실이다. 자민련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 지망생들의 목적은 의회 권력의 획득이다. 나름 이런저런 이유를 갖고 정당을 선택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공천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로 결정되고, 다른 당 후보들과의 경합에서 이겨 고대하던 `배지`를 달게 된다. 본선에 앞서 예선 격인 공천은 이들에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지역에 따라선 예선이 결승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남과 호남지역에 해당되는 얘기다. 공천은 곧 후보들의 `생명줄`이나 진배없다. 공천을 통한 당선은 권력을 얻게 되고 지위에 걸맞은 반사이익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으로서 많은 인적·물적 지원이 뒤따른다. 물론 신분 상승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다. 그러나 공천에서 탈락하면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이 당 저 당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되고, 철새나 정치꾼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공천 과정은 과거와 지금 분명 큰 차이가 있지만 살풍경스럽거나 비정함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3김 시절엔 공천이 아니라 사천이 횡행했다. 비근한 예로 `계단에 올라가다` 후보가 바뀌는 코미디 같은 일화도 있었다. 공천을 사실상 총재나 대표가 쥐고 있다 보니 당직자들이 낙점을 했다 하더라도 위층에 있는 총재실에서 뒤바뀐 경우를 빗댄 말이다. 특히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의 경우 정치자금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천을 받기 위해 골프장까지 쫓아가 `나이스 샷`을 외치며 얼굴 도장 찍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사천의 `진풍경`이었다.

근래의 공천은 어떤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원숭이지만 사람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아직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구시대 정치를 연상케 한다. "권력의 맛을 봤다가 못 보면 마지막에 부잣집 담벼락에서 죽는다"는 속설과 왠지 상통하는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양면성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작금 공천 논란의 `민낯`은 여전히 볼썽사납다. 내년 총선거를 앞두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내홍의 궁극적인 충돌 지점은 공천 문제다. 공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계파간 갈등은 예사이고, 심사가 뒤틀리면 탈당이나 신당 창당론까지 비화되는 것이 일련의 수순이다. 여론의 화살을 맞아 잠시 주춤할 순 있지만 이 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으면 또다시 불붙을 수 있는 `뇌관`과도 같다.

정치권력은 곧잘 동전의 앞뒷면에 비유된다.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막강한 권한과 주어진 책임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권력이 항상 지속될 것 같지만 이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정치는 운동성과 가변성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이나 권불십년이란 옛말도 그런 경고음이다. 이런 속성을 읽지 못하고 권력에 집착하면 개인이나 집단이나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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