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평가하는 옛 선조의 기준으로 신(身)은 풍체와 용모,언(言)은 말솜씨, 서(書)는 글쓰기 그리고 판(判)은 판단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중 왜 신을 처음으로 꼽았을까. 아마도 신체의 건강함, 외형의 수려함을 중요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이나 사물등에서 느껴지는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우리는 품격이라고 한다.

건물에 신언서판을 적용하면 어떨까. 건물의 외형은 그 건물의 이미지를 결정지며 아름답고 수려한 건물을 보노라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이렇게 멋진 건물들이 들어선 거리를 거닐면 기분까지도 즐거울 것이다. 또한 그 도시는 방문자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될까. 굳이 멀리 외국에서 찾아볼 것 없이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아름답고 품격 높은 건물이 눈에 띄일 것이다.

품격 높은 사람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듯 품격 높은 건물의 주인은 품격도 높을 것이고 또한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주택이라면 살고있는 사람도 기분 좋을 것이고 상업건물이면 임대가 잘될 것이며 공공건물이면 지역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주변 건물들을 품격있게 만들어 보자. 보기 드물고 비싼 재료로 화려하게 만들어야만 건물품격이 만들지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보는, 저렴한 재료로 절제되고 정돈된 깔끔한 모양새를 갖추면 가능하다. 거대하고 규모가 크다고 품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작지만 단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갖고있으면 품격은 확보할 수 있다. 도심지에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주변자연환경과 어우러졌다면 품격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는 어렵지 않다.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디자인하는 건축사, 건축사의 고뇌를 수용하고 창작고통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줄 아는 이해심 넓은 건축주, 부실은 생각도 않고 장인정신으로 사명감 가진 시공자, 이렇게 3인의 합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품격 높은 건물은 기본에서 출발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품격이 높으면 건물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고 가치가 높으면 합심한 3인은 물론 건물을 바라보는 모두가 즐거울 것이다. 품격높은 건물은 우리의 도시환경을 아름답게 만들고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확신한다.

건축사로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품격높은 건물에서 삶이 아름답기를, 품격높은 건물로 가득찬 아름다운 대전의 도시를 기대해본다.

김재범 대전건축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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