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 작품의 의미

 지난 10일 충남여중 학생들이 대전시립미술관을 찾아 도슨트 이승희 씨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김예지 기자
지난 10일 충남여중 학생들이 대전시립미술관을 찾아 도슨트 이승희 씨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김예지 기자
지난 10일 오후 1시 30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복 70주년 기념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세기의 동행'에는 18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느끼기 위해 전시관을 찾은 중·고등학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학생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숨죽인 채 바라보다가도 평소 교과서에서 접했던 익숙한 작가와 작품을 눈으로 확인할 때는 작은 탄성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66인의 작가와 270여 점의 근현대자료가 이야기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를 살펴봤다.

◇전통의 계승에서 한국적 근대의 모습으로=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국미술사에서 거장 66인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의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제1전시실 '계승과 혁신'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와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조선화의 오랜 전통과 화법을 고수하기 위해 서화시대의 확장으로 계승을 시도하고 혁신적 예술가의 시대를 거치며 진화해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전시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접할 수 있는 작품은 오원 장승업의 '잡화십곡병'이다. 장승업은 조선말기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산수, 화조, 영모, 어해, 기명절지 등 다양한 소재를 주재로 작품을 남겼다. 그의 뛰어난 기량은 제자들에게 전해져 한국근대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다. '춘하추동'을 그린 청전 이상범은 평범하고 완만한 한국의 산세를 즐겨 그린 작가다. 평범한 야산과 산골의 일상적인 모습을 특유의 수묵화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한국인 고유의 심성을 대변하고 있다.

박생광의 '무당'은 한국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방색 단청의 강렬한 원색으로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을 표현해 내 한국의 전통문화인 무속을 다루고 있다. 고암 이응노의 '외금강'은 전통적인 준법에서 벗어나 가벼운 선묘와 터치, 갈필을 사용하는 서양화법으로 금강산의 웅장한 기세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전통화의 영역에서 출발해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끊임없는 실험을 펼쳤던 고암 이응노는 한국 추상회화의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제 2전시실로 들어서면 일제강점기 한국화단을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국화단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상황에서 일본으로부터 야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와 같은 신흥 미술이 유입됐으며 서구 모더니즘의 체화도 한국적 근대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고희동은 한국인 최초로 서양화를 그린 작가로 1914년 겨울에 그린 '자화상'은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화작품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자화상'은 우리나라 근대 미술사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여류서양화가인 나혜석은 1927년 남편과 2년간 프랑스와 스페인 여행하며 접한 다양한 서구 화풍에 큰 영향을 받았다. 서양화 도입 초기 일본의 일방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 미술을 직접 받아들였으며 여성 운동과 문학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의 작품 '홍류동'은 나혜석 특유의 활달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부인의 상'을 그린 이종우는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을 배워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1925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광복 이후 분단·이산의 아픔이 예술로=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과 함께 해방의 기쁨이 도래한 것도 잠시, 정치적 견해의 충돌로 분단과 이산을 겪으면서 미술계도 격변의 상황을 거치게 된다. 남북으로 갈린 작가들과 외국에서 체류하며 활동한 작가들은 독특한 이산예술을 창조해냈다.

국민화가라 불리우는 박수근은 정규교육 없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으며 자연, 인간, 생명에 대한 애정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했다. 시장, 아낙네, 아이, 노인, 나무, 초가집 등 서민의 삶을 주제로 소박한 일상을 단아한 색채와 간결한 구도로 표현했다.

근대문화재인 '대가족'은 한국인 최초의 유럽 미술유학생이 된 배운성의 작품이다.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서울의 부자였던 백인기의 집사로 일하다 그 집 아들의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일본과 독일로 동행하며 미술유학생 생활을 하게 됐다. 대가족은 1930년대 초 독일체류시절 그린 작품으로 한옥을 배경으로 17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데 한복에 구두, 서양찻잔, 애완견 등의 모습에서 서구 문물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초 상류층의 삶을 보여준다.

이중섭의 은지화에서는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뒤 그리움으로 점철된 절절한 부정을 느낄 수 있다. 은지화는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작품으로 재료 특성상 단순한 형식에 과감한 선묘로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도슨트 이승희 씨는 "이중섭 작가는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다니다 일본에서 가족들과 이별한 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해냈다"며 "'동자'를 비롯해 그의 작품에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해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데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남준의 '피버옵틱'은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허문 로봇작품 중 하나로 인간과 기계가 현대문명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그려냈다. 과열된 속도를 상징하는 오토바이와 끊임없이 전환되는 전자 이미지가 산업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0세기 후반 민주화시대 예술의 모습은=1980년대 이후 민주화시대에 등장한 민중미술계열 작품은 사회비판과 참여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학철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1970년대를 지나며 사진몽타주나 콜라주를 이용해 산업사회, 대량소비사회의 물신성을 형상화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한국근현대사' 연작 대사인 노동자, 중산층,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을 인물을 포토리얼리즘으로 미화 없이 그려냈다.

이불은 좌파 정치범으로 낙인찍혔던 부모와 연좌제의 사슬에 묶인 가정에서 성장하며 퍼포먼스, 설치, 조각 작품 등으로 '페미니즘'의 이슈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는 모더니즘과 민중계열로 양분돼 1980년대 말 경직돼 있던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시를 관람한 충남여중 2학년 이유진 양은 "그림이라고 하면 깔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그림들을 주로 떠올리는데 근현대 시기에 그려진 거친 질감의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다"며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우리 민족이 느꼈던 불안과 슬픔을 거칠게 표현해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예지 기자

도움말=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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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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