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피서철이 다가온다. 힘든 일상을 떠나 자연으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기도 때로는 유난스럽기도 하다. 인간의 태생이 자연인이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과 생동하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문득, 시선을 붙잡는 커다란 `심쿵`, 그 하나로 우리는 멈춰 선다. 더러는 도로변에, 또는 들판 저 멀리 서있는 모습은 실로 태고의 거인의 모습이다. 느티나무다. 마을 어귀의 커다란 둥구나무나 정자나무로서 국가대표격이다. 그 뒤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연스러운 지형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마침맞게 터를 잡고 있는 크고 작은 집들이 보인다. 우리들의 고향 마을 풍경이다. 동구(洞口)의 느티나무는 아버지의 믿음처럼 가장으로서 버팀목이자 원동력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삶의 원천인 것이다.

무한의 자연에서 유한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의 경계이자 결절점으로서의 느티나무는 삶의 터전에서 다양한 행위와 공간을 이끌어낸다. 함께 모여 잔치와 토론을 벌이는 공공의 광장(廣場)이자, 때로는 토테미즘의 성지(聖地)가 되기도 한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쉼터이자 놀이터다. 어미 품을 떠나는 자식과의 이별의 장소, 지아비를 먼저 보내는 한(恨)의 장소이며, 타지와 일터에서 지쳐 돌아오는 사람들의 땀과 희망을 넉넉한 그늘로 어루만져 주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자연과 삶의 시작이자 끝이며 중심이다. 마을의 수호자로서 가장 큰 어른의 역할을 자처하며 어른과 아이, 이웃과 가족 그리고 나와 자연을 아우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장치이자 성숙한 위계이며 위대한 역사인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목, 멀리서 우리를 맞는 고층아파트의 위세가 낯설다. 도시에 사는 우리의 마을이지만 여기에는 느티나무가 없다. 단지내 아파트는 규격에 맞추어 줄지어 정렬하고 인공 울타리로 외부와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느티나무자리에는 2층짜리 단지내 상가가 어색하게 번잡거린다. 상가를 지나면 마을로 들어서고 나오는 것이다. 그나마 군데군데 심어놓은 조경수만이 이곳이 삶의 터전임을 드러낼 뿐이다. 자연도 이웃도 어른도 없다. 오롯이 나만이 존재한다.

건축인으로서 상상해 본다. 우리 아파트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를 심어 계획했다면… 우리의 느티나무를 자리매김 할 수 있다면… 우리 도시의 마을에 실낱 같은 희망을 심어보자.

이상우 에녹 건축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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