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경 독립기념관 관장
윤주경 독립기념관 관장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은 지난 5월 11일 선포한 광복 70주년의 주제어다.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살리고, 나아가 미래 발전의 단초로 삼자는 의지에서 비롯한 표어인 것이다.

1910년 망국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독립운동은 실로 위대한 여정이었다. 비록 나라를 잃었으나 선열들이 일으킨 독립운동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알린 정의와 양심의 역사였다.

필자는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만주 벌판에서 이 `위대한 여정`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지난 6월 중순 독립기념관이 중국 연길에서 주최한 광복 70주년 국제학술회의를 마치고 심양까지 고속철로 이동했는데 차창 밖에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북간도에서 서간도로 이어지는 벌판에는 과거 한인들이 일구었던 논과 밭이 푸른 물결로 춤을 추고 있었다. 평온하고 한가롭기만한 풍광이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가면 저 들판은 한인의 애환과 고난이 짙게 배어 있는 곳이었다. 100년 전 민족독립을 위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 식민지배로 피폐해진 고향을 떠나 이주한 한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한인들은 드넓은 평원을 무대로 수전을 일구었고 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만주지역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군이 우리의 독립군을 잡으려면 먼저 논이 있는 곳부터 뒤졌다고 한다. 북간도와 서간도의 벌판은 한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독립운동의 기지이기도 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한편으론 독립군의 길을 개척해 갔던 것이다. 때문에 독립운동의 `위대한 여정`은 만주 들판과 산하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차창 너머로 독립을 꿈꾸던 선열들의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이 어른거렸고, 그들이 염원하고 갈구했던 독립의 의미를 오늘날의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송구함도 겹쳐져 다가왔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연변대학과 업무협약을 위해 연변을 찾았을 때 도문의 봉오동전적지를 돌아본 일이 있었다.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을 무찌른 봉오동전투의 전적지였다. 12월의 봉오동은 영하 20도가 넘는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와 삭풍으로 걸음조차 떼기 어려울 정도였다.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부대는 그해 10월에 저 유명한 청산리대첩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후 북간도의 삼림을 헤치고 구소련의 이만이란 곳으로 이동했는데, 그때가 1921년 3월의 일이었다. 장장 5개월의 대장정이었다. 그런데 여름옷으로 나섰던 독립군들은 미처 겨울 채비를 못한채 떠나야 했고, 밤이면 북간도와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겨내고자 끌어안으며 서로의 체온으로 녹여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동사(凍死)한 독립군이 적지 않았다고 하니, 그 또한 필자에겐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야말로 시련과 고난의 가시밭길이었던 `위대한 여정`에는 그런 감동과 충격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2015년을 우리가 광복 70주년으로 기념하듯이 중국에서는 항전승리 70주년으로 기념하고 있다. 그들은 항전승리 앞에 반파시즘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하여 평화의 길을 연 승리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반파시즘 항전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중국의 열기는 부러워할 만큼 뜨거운데, 놀라운 사실은 그 과정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하얼빈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지은 것과 지난 해 항주에 임시정부 청사를 국가급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그런 바탕에서 이뤄진 일들이었다. 안중근의사가 외친 동양평화의 의미를 그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고난에 처해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이 정작 `위대한 여정`인 것은 한국의 독립만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 나아가 인류 평화를 위한 길로 나갔던 때문이다. 제국주의 퇴치를 위한 평화운동이었던 독립운동을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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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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