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충청권 의원들의 독무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 개최돼 긴장감이 넘쳤지만 충청의원들의 소신 발언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앞서 개정 국회법에 반대표를 던졌던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장우(대전 동) 의원도 유 원내대표를 몰아치는 데 가세했다.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정용기(대전 대덕) 박덕흠 의원(충북 보은·옥천·영동) 역시 약속이나 한 듯 퇴진 압박의 보조를 맞췄다.

40여 명의 다른 의원들이 원론적 차원에서 입을 연 것과는 확연히 대비됐다. 원내대표 책임론을 거론한 의원 9명 중 충청 출신이 5명이었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의 목청은 의총 이후 더욱 높아졌다. 김 의원의 경우 하루 6차례 이상 방송에 나올 정도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당 긴급최고위원회에서 유 원내대표의 `명예퇴진` 쪽으로 가닥이 잡힌 뒤 숨 고르기에 들어간 양상이지만 정국을 관통한 현안 앞에 거칠 게 없다는 행보다. 충청의원들의 다음 카드에 주목하는 당 안팎의 기류마저 감지된다.

야권의 소신 행보도 두드러진다.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대전 유성)은 개정 국회법 중재안을 도출해낸 정의화 국회의장에 강하게 맞섰다. 국회법상 의장에 주어진 의안 정리 권한에 따라 자구 수정 절차를 밟기 위해 법안이 법사위에 넘어왔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의안 정리 사항이 아닌 번안 사항인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 위원장은 결국 재발 방지를 전제로 이를 받아들이는 정치력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정 의장은 중재안의 정부 이송을 위해 3시간을 기다리는 수모를 겪었다. 이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거부권이 행사된 개정안보다 훨씬 강력한 내용의 이른바 `박근혜법`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어제 밝혔다.

앞서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대전 서을)은 국회법 개정안 의결 당시 당에서 유일하게 기권했다. 박 의원은 "꼬리(시행령)가 몸통(모법)을 흔드는 사례의 대표가 세월호법 시행령으로, 시정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도 "국회가 국회법으로 시행령 위법여부를 일반적으로 심사해 수정요구하고 정부가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기권했다. 판사 출신으로 참여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지낸 이력을 감안할 때 그의 선택은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졌다.

개정 국회법 정국에서 충청권 의원들의 목소리 분출은 의외라면 의외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사안의 폭발력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을 침묵으로 빠져들게 했다. 당 운영의 주도권을 잡은 영남권 의원들은 거부권 행사에 관한 한 몸조심 하는 기색이 여전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만은 피해가겠다는 속내다. 거부권 정국을 계기로 당내 분란을 뒤로 미룬 채 강 건너 불 구경 나선 새정치연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모습에 비쳐볼 때 충청의원들의 결기는 돋보인다.

충청권 의원들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이완구 국무총리 낙마 이후 구심점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마저 야권의 대권주자 반열에서 잠시 비켜나 있는 현실에서 나온 반사적 행동으로 폄하하는데 이건 아니다. 총선이 멀지 않은 상황에서 표를 의식한 권력 놀음이라는 비판도 온당치 않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충청의원들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원칙과 명분에 충실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논란이 없지는 않다.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이심전심에 대해 `충박(忠朴·충청박근혜)계 탄생 등의 신조어가 나온 게 그 중 하나다. 이 위원장의 선택을 놓고도 일각에서 월권 따위의 비판을 제기한 게 사실이다. 정파나 계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지역민 입장에서는 모처럼 할 말을 하는 의원들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손으로 뽑은 선량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기다려왔다는 방증이다. 충청권 의원들이 거부권 정국을 고리로 충청 정치의 위상과 역량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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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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