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고수동굴

7월이다. 여름이 시작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운 계절이다. 사람들은 잠시 동안의 더위를 잊어보고자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빌딩 숲에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가려져서다. 넥타이 말고 반바지를 입고 싶고 두꺼운 뿔테안경 대신 썬글라스를 써보고 싶다. 더워진 날씨를 핑계 삼아 도심을 떠나고 싶은 때다.

사실 여름은 뜨거운 열기보다 땅바닥을 적시는 장맛비가 먼저다. 높은 하늘을 만끽하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장마를 피해 휴가계획을 내놓는다. 순간 고민이 생겼다. 장마와 더위가 도사리고 있어도 얼마든지 여행을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바다와 산은 여름 휴가지로 너무 뻔하니 독특한 장소가 필요했다. 다시 말해 장맛비가 쏟아져도, 무더위가 내리 쬐도 휴가를 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더운 날에 시원하고 비를 피하면서도 자연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

충청북도 단양군으로 출발했다. 정확히 고수동굴로 향했다. 동굴에 들어가면 비도 맞지 않을 테고, 시원한 냉기가 그대로 서려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결정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한편으로 기자 개인의 야단 맞은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가뭄에 강물이 말라 반강제적으로 레프팅 일정을 취소한 탓도 있다. 그 것은 여름이 더 진해지거든 다녀오기로 하고 등산화와 손전등을 챙겼다. 자체적으로 `생명수`라 칭한 생수도 한통 챙겼다. 이왕이면 탐험가의 모습으로 동굴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 것은 탐험이다.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대전에서 출발해 2시간 30분 가량이 소요됐다. 동굴 입구에서 강종민 고수동굴 문화재관리소 안내팀장을 만났다. 창피하지만 강 팀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다음과 같다.

"혹시 동굴이 무너져 갇힐 수도 있나요?"

강 팀장은 너털웃음으로 우문현답을 대신하고 자신을 따라오라며 동굴로 입장했다. 고수동굴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며 석회암을 녹여 만들어졌다. 석회동굴이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76년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관람이 가능한 구간 940m, 미공개구간 455m, 총길이는 1395m다. 깊은 동굴이다. 동굴에 들어서자마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쏟아진다. 마침 이마에도 땀방울이 꽤나 맺힌 상태였다. 동굴 내 연평균 기온은 15℃를 유지한다. 자연이 만든 에어콘이다. 전력수급의 걱정이 필요없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하다.

고수동굴은 동굴환경개선을 위해 얼마 전 1차 공사를 마쳤다. 조명, 탐방로 등을 개선했다. 때문에 아름다운 동굴내 경관을 더욱 깊게 살펴볼 수 있다. 챙겨왔던 손전등은 가방에 넣어 두기로 했다. 손전등은 필요없었지만 탐험가 체험은 해볼 수 있었다. 동굴 내에서 해발 200m를 계단으로 오른다. 계단이 없다면 이곳은 둥글고 넓게 뚫린 수직의 구멍이다. 온도는 시원한데 다시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동굴 안을 메우고 있는 95%의 습도 덕분이다. 또 탐방로가 성인 1인만 통행할 수 있는 정도의 넓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더욱 붐빈다. 계단을 오르다 무심코 아래를 쳐다봤다. 오금이 저린다. 바닥이 까맣게 보이니 더욱 무섭다. 공포보다는 스릴이라고 하겠다.

고수동굴은 이런 스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굴생성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지하수가 물방울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동굴 천장의 종유석, 반대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퇴적돼 형성된 석순, 이 둘이 만난 석주 등 기이한 동굴생성물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탄성을 자아내며 동굴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강팀장이 허리를 숙였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가끔씩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는 분들이 계세요.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곳이면 바로 주울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곳, 특히 깊숙한 낭떠러지에 쓰레기를 버릴 경우 관리자로서 난감합니다"

강팀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주머니에 쓰레기를 넣고 동굴의 천장과 벽면을 가리켰다. 벽면에는 조막 만한 자갈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 물이 흘렀다는 증거다. 다른 편 벽면에는 물길이 그대로 남아 문양을 형성했다. 동굴은 수 억년 전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A코스의 종점에 도착했다. 고수동굴은 A코스와 B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관람객의 선택에 따라 A코스, A+B코스로 표를 끊을 수 있다. 기자는 탐험가의 의지를 멈출 수 없어 생명수를 한 모금 마시고 B코스로 발길을 옮겼다. B코스는 A코스보다 더욱 볼거리가 많다. 아니 관람하기가 좋다. 동굴환경개선을 위한 1차공사가 B코스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기 직전인, 사랑바위에서부터 사자모양의 종유석인 사자바위 등 B코스에 들어서면 A코스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조명환경을 느껴볼 수 있다.

매년 여름철이 되면 하루 1만4000여명의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 이유야 어쨋든 여름철에 관광객이 붐빈다니 여름 휴가지로도 적합하다는 의미다. 올 여름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오는 11월부터 내년 6월말까지 동굴내부환경개선을 위한 2차공사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사기간 동안 동굴은 폐쇄된다.

동굴을 나오니 다시금 더운 공기가 찾아든다. 등으로 불어드는 냉기가 아쉬워 한 동안 동굴의 출구에 머물러 있었다. 동굴 탐험가 행세도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도심 속 탐험가로 돌아가야 할 차례다. 김대욱 기자

도움=고수·천동동굴 관리사무소·단양군청

◇TIP : 탐험가 행세를 더 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인근에 위치한 천동동굴도 추천한다. 고수동굴보다 작은 규모지만 입구부터 안전모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탐방로 천장이 낮다. 걷는 시간보다 오리걸음으로 가야 하는 구간이 더 많다. 해설사 말로는 130㎏의 성인남성도 다녀갔다고 하는데 꽤나 힘이 들었다. 익사이팅한 동굴탐방을 원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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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동굴 내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사자바위. 마치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사진 위). 천동동굴 내부 모습으로 천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오리걸음으로 통행을 해야 한다.    김대욱 기자
고수 동굴 내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사자바위. 마치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사진 위). 천동동굴 내부 모습으로 천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오리걸음으로 통행을 해야 한다. 김대욱 기자
고수동굴 내부. 성인 1명이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의 탐방로는 동굴관람의 스릴을 가미시킨다.  김대욱 기자
고수동굴 내부. 성인 1명이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의 탐방로는 동굴관람의 스릴을 가미시킨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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