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여당 첨예 갈등 흔들리는 배에 탄 국민 구시대적 권력쟁투 탈피 협력·상생의 길 모색을 "

지난 주말 무렵 지인들과 함께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일본 돗토리현 지역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출국할 무렵에는 메르스가 단연 대화의 초점이었으나 일본행 여객선에 오른 뒤부터는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간의 갈등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이국의 풍경을 보면서 한국의 정치현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국회운영에 대한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간의 원색적인 갈등 소식을 듣고, 여객선 갑판에서 캄캄한 밤바다를 가르는 배를 보며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이다. 이 배는 GPS로 안전한 항로를 찾고 선장의 지휘 하에 여러 승무원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서로 협조하여 바닷길에 문외한인 여행객들을 순조롭게 인도하고 있다. 대통령, 여당, 야당 등 `대한민국호`의 책임 있는 고위 정치엘리트들도 국가의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자기 역할을 다하고 협력하면서 국민들을 안전하게 이끌고 있는 것일까?

다음날 스마트폰으로 한국 정치 소식을 조금 더 자세히 읽고, 여행지 일본의 농촌과 소도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차창 너머 일본의 농촌과 어촌. 그리고 중소도시의 대부분 집들은 규모와 모양이 비슷하고 지붕도 회색 내지 붉은 기와를 얹은 일본풍의 단독주택들인데, 이렇게 단조롭고 개성 없는 집들은 튀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여기에는 무사의 `칼`과 `통치자`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반면 3·1운동과 4·19혁명, 5월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등 절대권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여당을 압박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이것은 우리가 이미 통과한 조선왕조나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했던 건 아닐까?

일본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3미터의 험한 파도가 넘실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승객들은 파도에 지쳐 객실에서 꼼짝 않으며 이 어지러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선상 사우나는 위험해서 문을 닫았고, 면세점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다. 이 때 필자는 캄캄한 객실 침대에 누워 흔들리는 배 같은 한국정치를 생각하였다. 한국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국민들에게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성완종리스트, 메르스사태, 이어서 터져 나온 대통령과 여당간의 첨예한 갈등국면은 우리들을 어지럽게 한다.

특히 위의 마지막에 대해 어지럼을 느끼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앞에 구시대의 정치적 권위주의가 환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사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오랫동안 여당의 총재로 공천권과 정치자금 배분권, 그리고 국회의장까지 내정할 정도로 국회까지 지배하였다. 이 전통은 노무현 대통령이 깨버렸다. 새롭게 정립된 정부-국회관계에 대해 행정부는 일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학자들은 양자 간 균형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한다. 우리를 어지럽게 하는 두 번째 요소는 인치(rule of man)에서 법치(rule of law)로 가는 시대적 흐름이 역류하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와 달리 근대에는 사람에 충성하는 대신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 룰에 구속된다. 지도자의 권위는 지도자 자신도 룰에 따를 때만 확보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정치적 갈등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권내 계파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권력쟁투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당 안에 복수의 계파와 보스가 있다는 것은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낮다는 징표다. 이번 대통령-여당간 갈등 국면은 국민들의 메르스 공포를 제압할 정도로 강력했고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순기능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새로운 민주적 룰이 정립되었으면 설사 이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든지 이 룰 안에서 자기역할에 맞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치적 룰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바른 태도는 그 룰을 지키거나 당사자 간에 합의하여 고쳐나가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새로운 룰에 따른 협력과 상생의 정치가 꽃 피길 기대해 본다.

윤주명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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