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메르스 바이러스의 극성으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을 즈음인 지난 6월 9일,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담화의 주인공들이 한 팀이 되어 "전후 70년을 말한다"라는 명제의 기자회견을 하였다. 아베내각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왜곡과 헌법훼손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라야마 도이치(村山富市)는 1994년 사회당과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을 통해 탄생한 일본의 81대 총리였다. 그는 일본 패전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 "전쟁이전에 저지른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담화형식으로 발표한 인물이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내각의 관방장관 재임 시인 1993년 8월에 "일본정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발표한다고 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기록한 방명록에 무라야마는 "사무사(思無邪)"를, 고노는 "진실(眞實)"이라는 한자 휘호를 하였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자못 주의 깊게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것은 추측컨대 자신들이 그동안 해온 이력이나 세계를 향해 발표한 담화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요 또 무슨 사심이 있어 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사무사(思無邪)>의 심정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다시 되새겨보면 아베정권이 벌리고 있는 역사왜곡이나 어설픈 우경화노선이 결코 진실되지 못하고 사특(邪慝)한 것이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는 데에 더 큰 뜻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이런 추측은 이들 두 사람이 예전과 똑같이 무라야마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론을 바탕으로 "일본은 일본의 침략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노는 "위안부문제는 네델란드 정부의 조사에서도 강제연행"이라고 밝혀진 사실임을 강조하였던 사실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무사(思無邪)>하면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문자 그대로 시대의 풍운아(風雲兒)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굴곡지게 살아온 J P 김종필씨다.

"정치야 말로 허업(虛業)"이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석양에 드리운 그림자를 휠체어로 밟으며 2014년 9월 21일자로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았다. "<사무사(思無邪)>를/인생의 도리로 삼고/한 편생 어기지 않았으며/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노력 하였거늘/만년(晩年)에 이르러/<90이지 89비(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탄(嘆)하며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하던 자/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JP의 이 묘비명이 말해주는 맥락이 그야 말로 사무사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제 나이 90이 돠어서야 비로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어떤 물음에도 미소 지을 뿐 무슨 답이 필요하랴 싶은 사무사의 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사무사란 바로 그런 것이다. 원래 사무사란 말은 시경(詩經)에서 노(魯)나라 임금의 수레를 끄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말(馬)을 두고 쓴 시 에서부터 연유한다. 노송(魯頌) 즉 노나라 임금에 대한 노래에서다. 네 편의 시중에 경편 즉 살찐 말을 노래하는 시 끝 구절에 "사무사 사마사조"라는 말이 나온다. 사특한 생각이 없으니 얼마나 잘 달리겠는가 하는 의미로 달리는 말을 칭송하는 시구가 아닌가 싶다. 공자가 시경을 논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논어 위정편(爲政編)에서다. "시 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詩 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즉 "시 삼백수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라고 말이다. 사무사라는 말은 그래서 더 유명해 졌다.

그러나 사무사는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있는 말(言)이 아니다. 참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행여나 한 점 부끄러움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있어야 비로소 사무사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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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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