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기록한 방명록에 무라야마는 "사무사(思無邪)"를, 고노는 "진실(眞實)"이라는 한자 휘호를 하였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자못 주의 깊게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것은 추측컨대 자신들이 그동안 해온 이력이나 세계를 향해 발표한 담화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요 또 무슨 사심이 있어 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사무사(思無邪)>의 심정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다시 되새겨보면 아베정권이 벌리고 있는 역사왜곡이나 어설픈 우경화노선이 결코 진실되지 못하고 사특(邪慝)한 것이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하는 데에 더 큰 뜻이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이런 추측은 이들 두 사람이 예전과 똑같이 무라야마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론을 바탕으로 "일본은 일본의 침략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노는 "위안부문제는 네델란드 정부의 조사에서도 강제연행"이라고 밝혀진 사실임을 강조하였던 사실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무사(思無邪)>하면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문자 그대로 시대의 풍운아(風雲兒)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굴곡지게 살아온 J P 김종필씨다.
"정치야 말로 허업(虛業)"이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석양에 드리운 그림자를 휠체어로 밟으며 2014년 9월 21일자로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았다. "<사무사(思無邪)>를/인생의 도리로 삼고/한 편생 어기지 않았으며/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을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헌신노력 하였거늘/만년(晩年)에 이르러/<90이지 89비(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탄(嘆)하며 수다한 물음에는 소이부답(笑而不答)하던 자/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세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JP의 이 묘비명이 말해주는 맥락이 그야 말로 사무사가 무엇인가 하는것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제 나이 90이 돠어서야 비로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어떤 물음에도 미소 지을 뿐 무슨 답이 필요하랴 싶은 사무사의 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사무사란 바로 그런 것이다. 원래 사무사란 말은 시경(詩經)에서 노(魯)나라 임금의 수레를 끄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말(馬)을 두고 쓴 시 에서부터 연유한다. 노송(魯頌) 즉 노나라 임금에 대한 노래에서다. 네 편의 시중에 경편 즉 살찐 말을 노래하는 시 끝 구절에 "사무사 사마사조"라는 말이 나온다. 사특한 생각이 없으니 얼마나 잘 달리겠는가 하는 의미로 달리는 말을 칭송하는 시구가 아닌가 싶다. 공자가 시경을 논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논어 위정편(爲政編)에서다. "시 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詩 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즉 "시 삼백수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무사"라고 말이다. 사무사라는 말은 그래서 더 유명해 졌다.
그러나 사무사는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있는 말(言)이 아니다. 참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행여나 한 점 부끄러움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있어야 비로소 사무사란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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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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