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무형으로 존재하며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기도 하지만 건축물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장 중요한 유형 자산이다. 회화나 조각은 찾아가 보는 것이지만 건축물은 보여 지는 것이다. 도시의 대부분이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노트르담 대성당을 서울에 옮겨 놓는다고 서울이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도시가 되지는 않는다. 도시는 상징적인 몇몇 건축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대부분은 소시민이 잠자고 일하고 휴식하는 중소형 건축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중소형 건축물을 빼놓고 아름다운 도시를 논하는 것은 허구요 기만이다. 중소형 건축물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선 법적으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건축사`다. 개업한 건축사 대부분이 중소형 건축물의 설계에 종사한다. 1963년도에 건축사법이 제정되고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0년간 배출된 건축사가 7942명이고, 이후 2013년도까지 18년간 배출된 건축사가 1만 1978명이다. 오늘의 건축사는 건축사 과잉의 시대에 무차별적 덤핑 수주라는 벼랑 끝에 서있다. 따라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도 찾아가는 서비스로 바뀌고 있으며 건축주의 입장에서 이는 매우 긍정적이다. 문제는 무제한적인 기본계획의 요구다. 업계에서는 기본계획이 본설계로 이어지는 비율을 약 14%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에 따르면 계획설계비의 비율을 20-25%로 정하고 있으나 현실은 다르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는 계획설계비 받기운동을 실시하고 있으나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 공짜설계를 강요하는 것이다. 오늘도 건축사는 공짜설계의 터널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혼을 담은 건축물을 기대할 수 없다. 건축사가 행복할 때 아름다운 도시가 가능하다. 손근익
前 대전시건축사회 회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