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시 방향등 켜고 감염 우려땐 마스크 착용을 타인에게 작은 배려 큰 도움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MERS)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초기대응에 방심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방역 방위선이 완전히 뚫려버린 형국이다. 3차 방어선까지 뚫린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이 철저한 개인위생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역당국과 병원이 이 바이러스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으리라 믿지만 빠른 시기에 이 상황을 종료시키려면 메르스 감염자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바이러스가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격리되거나 접촉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적절히 알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조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는 곧 메르스 감염 신호를 보내는 `배려`를 하는 것이다. 감염된 사람은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옮았기 때문에 자신이 격리당하거나 주변의 유별난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이 질병의 마지노선이 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과거 누군가로부터 에이즈를 옮았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 고통을 주고자 일부러 전염시킨 사건이 있었다. 이런 행동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 공동체를 파괴해버린다.

요즘 일련의 상황이 혹시라도 개인의 철저한 이기적 행동이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의 최고 선(善)을 만들어낸다는, 이른바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한 까닭 때문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너무 이기적 행동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려면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옥에는 먹을 것이 풍부한데 사람들이 모두 여위어 있고, 천국에는 모두 잘 먹고 건강하더란다. 왜 그런가 보니 지옥에서는 모두 긴 숟가락을 갖고 혼자 음식을 떠 넣으려니 먹을 수 없었지만, 천국에서는 똑같은 숟가락으로도 서로서로 먹여주더라는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대전에 이사 온 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길 찾는 게 서투르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시내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운전을 할 때 가장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깜빡이(방향지시등)를 켜지 않는 차를 뒤따라갈 때이다. 신호등이 바로 앞의 가까운 곳에 있거나 도로 위에 차선이 분명하게 보이면 차선을 찾아가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바로 앞에 가는 차들이 신호등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일이다. 차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신호등이 멀리 있어 당연히 앞쪽 차의 신호를 따랐다. 모두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서 있어 그 차선이 당연히 직진차선이라 생각하고 그 뒤에 정지했다. 하지만 그 차선은 좌회전 차선이었다. 옆 차선에서는 차가 쌩쌩 달려 곧바로 차선을 바꾸기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원치 않는 좌회전을 한 후에 먼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출근 시간과 같이 바쁠 때 이런 일을 겪게 되면 깜빡이를 켜지 않은 앞의 차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깜빡이 하나로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깜빡이를 켜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인데 어떤 도시는 유독 깜빡이 켜는 것에 인색하다. 타지에서 그 도시를 찾아온 사람에게는 이런 작은 배려가 크게 다가온다. 어떤 도시에 가서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면 그 사람들이 외부 사람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까지도 받게 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신호를 분명히 보내는 것은 작은 배려이지만 뒤따르는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자동차 깜빡이와 메르스 감염신호. 작은 배려지만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이상용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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