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들어본 적도 또 본 적도 없는 메르스(MERS)라고 하는 괴질(怪疾)이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상륙하여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500여 년 전의 임진왜란 때의 정경과 닮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임진왜란 때처럼 우리의 정쟁 중에 침입해 왔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정세를 살피기 위해 일본에 갔던 사신들이 귀국하여 임금에게 보고한 내용은 소속 당파가 어디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랐다. 정사(正使)인 서인 측의 황윤길은 "반드시 머지않아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으나 동인 측의 부사(副使) 김성일은 "윤길은 공연히 인심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동인과 서인들은 두 사람의 말에 따라 춤추고 있었다.

지난 얼마 동안 우리의 정정(政情)도 이와 똑같았다. 메르스에 감염되는 환자의 수는 하나둘 증가해 가는데 정치권에서는 이에는 아랑곳없이 여·야 간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놓고 싸움질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협상을 통해 정부가 제정한 각종 시행령에 대해서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러자 이제는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여·야는 또다시 한쪽은 강제조항이 아니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강제조항이라고 하면서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똑같이 국회법을 개정해 놓고 정반대의 해석을 한 것이다. 일본을 보고 나서 동서로 패가 갈린 사신들이 정반대의 보고를 한 것과 어찌 그리도 똑같은지 정말로 신기할 정도다. 정부가 메르스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도 또한 임란 때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우선 2012년부터 메르스에 대한 경고를 울렸는데도 이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에서도 임란 때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점에서도 너무나 닮았다고 할 것이다.

1592년(선조 25) 4월,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진격해 오자 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을 토벌대장으로 앞장세웠다. 그러나 그는 기병 출신이었다. 기병 수천 명을 데리고 산악지대를 버리고 평야지대로 나가 10만이 넘는 적군과 싸우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적군은 부산을 함락한 지 18일 만에 서울에 진입할 수 있었다. 메르스 환자는 지난 5월 20일에 발생하였다. 그로부터 16일이 지난 뒤에야 정부에서는 1번 환자가 발생한 평택 성모병원을 공개하면서 병원 방문자를 전수 조사하기로 하였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그 사이 바이러스는 파죽지세로 번져 나갔다. 질병관리본부의 수장인 장관은 기병에만 능한 신립 장군처럼 보건 의료 문제에는 문외한인 복지 전문가였다. 16일 동안을 허송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심은 극도로 팽배해 가고 있었다. 임란 때의 백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립 장군이 탄금대 전투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야는 공포와 불안과 분노로 한껏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 대신들은 더러는 피란을 가자고 하고 더러는 강화(講和)를 하자고 하면서 논쟁만 했다.

마찬가지로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는데 각 당마다 친노네 비노네 또는 친박 비박 하면서 갈등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당정과 함께 논의하기로 한 약속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대통령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잠재울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임란 때 각 고을의 관리들은 고을 주민 모두에게 적을 피해 도망가라는 격문만 띄우고 왜병을 맞아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모든 감염 대상자들에게 가택 격리를 하라는 지시만 할 뿐 개별 진료나 격리를 할 병상 하나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임란 때의 벼슬아치들이 척후병을 파견하여 적정을 염탐할 줄만 알았어도 전투는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초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질병관리본부의 누군가가 평택병원에 가서 현장 조사라도 했더라면 환자의 증가 속도는 훨씬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메르스 징비록(懲毖錄)`을 써 남겨야 할 것 같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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