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과 보통 정원이 다른 점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름표가 있고 없음이다. 이름표에는 그 나라 식물 이름도 적혀 있지만 보통은 학명을 가장 돋보이게 쓴다. 학명은 식물 이름의 세계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세상 언어가 모두 달라서 오는 혼란과 불편함을 없애거나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학명이란 누구나 똑같이 쓰고 읽자고 만든 약속 언어다. 그래서 오래전에 사라져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언어인 라틴어 소릿값을 적용해 읽는다.

오늘 아침에도 국립생태원 경내에 제법 많은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L.)를 두고 여러 사람이 카멜리아 자포니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Camellia`는 필리핀에서 예수회 선교사로 활동한 게오르그 카멜을 기리기 위해 만든 속명이고, `japonica`는 일본 식물임을 뜻하는 종명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들 이를 자포니카로 읽는데 내 귀에는 영 거슬린다. 자포니카가 아니고 야포니카인데….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전학을 가 한동안 세련된 깍쟁이 같은 도시 말씨에 주눅 들어 벙어리처럼 지냈다. 뜻은 같은데 사투리와 표준말의 소릿값 차이를 메꿀 길이 없어서 촌놈으로서 눈치를 본 셈이다. 비슷한 일을 유학 초기에도 겪었다. 모두들 식물 이름을 학명으로 얘기하는데 나 혼자만 도대체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어 괜한 눈치만 보면서 혼자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을 알고 나니 오히려 쉬운 게 학명 읽기였고, 다른 언어권 전문가들과 만나서도 소통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온 세상이 하나로 재편되는 이른바 세계화 시대여서 학명조차도 식물분류학 쪽에서 보면 한낱 사투리에 불과한 영어처럼 읽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할 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학명을 쓰기로 한 본래 취지를 살려 세상 모든 것들과 다른 또 하나의 우주라고 해서 이름 붙인 식물 종을 제대로 대접하는 방법도 이제는 옳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하버드대학 휘장에는 진리라는 뜻의 veritas를 새겨 놓았다. 나더러 읽으라면 베리타스다. 그런데 궁금하다. 정작 그들은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그 대학 졸업식에서는 총장이 축사를 라틴어로 한다는데 내 귀에는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가보고 싶다.

하 연 국립생태원 식물관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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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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