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람을 평할 때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로 구분하는 것처럼 정치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정치를 하면 좋은 정치가 될 것이고 나쁜 사람들이 모여 정치를 하면 나쁜 정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동양에서는 요순(堯舜)정치를 이상으로 삼아 성군이 나타나기를 고대하였고 서양에서는 철인군주(monarchy)를 최고 가치로 삼아 좋은 정치의 표본으로 삼았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똑같이 나쁜 임금이 나타나면 그를 폭군(tyranny)이라 하여 언제든지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도 좋을 사람으로 치부하였다. 서양의 폭군방벌(暴君放伐)사상이 바로 그것이고 동양의 맹자사상과 군주와 백성과의 관계를 물과 배(舟)의 관계로 본 사상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임금이 폭군이라면 언제든지 백성이 쳐부숴도 좋을 대상으로 보았고 동양에서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어엎어 가라앉히기도 하기 때문에 임금이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물이 배를 가라앉히듯이 뒤집어엎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맹자는 백성이 끌어내려 죽인 임금을 임금으로 보지 않고 한낱 필부(匹夫)를 죽인 것일 뿐 임금을 죽인 적은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폭군은 임금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동양사상의 근저에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민본사상을 근본으로 삼아 정치를 해본들 군주정치로는 세상이 조용할 수가 없다. 좋은 임금만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난 정치체제가 민주정치체제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는 민주정치에도 좋은 민주정치(democracy)가 있고 나쁜 민주정치(mobocracy)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무엇으로 판별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는다. 이는 결국 법이 살아 있느냐의 여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법과 무법 그리고 공(公)과 사(私)가 모든 정치의 판별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의 민주정치는 과연 좋은 민주정치가 되어 제대로 작동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나쁜 민주정치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이 좋은 민주정치적 요소를 잠식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쁜 민주정치(mobocracy)! 이를 두고 학자들은 중우(衆愚)정치 또는 폭민(暴民)정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우는 어리석은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니 중우정치는 어리석은 무리들의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리석은 무리들이 무슨 정치를 할 것인가!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어리석은 무리들을 선동하여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결국은 좋은 정치가 중우정치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폭민정치란 말도 그렇다. 국민들이 언제 한 번 폭민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이런저런 정치적 집회장소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여야 정치지도자들에게 모욕과 야유와 폭력을 휘두르거나 데모현장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에게 집단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와 더불어 집단농성을 직업 삼아 하는 행위는 또 무엇인가! 이런 것이 바로 중우정치요 폭민정치가 아니겠는가?

정치인들이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내뱉는 막말정치와 패거리정치, 멱살잡이정치와 욕지거리정치와 한풀이정치가 결국은 나쁜 정치를 낳는 온상이라 여겨진다. 여기에 더하여 지역이기주의와 지역패권주의가 집단이기주의를 품어 안으면서 증오의 정치를 잉태하여 낳은 정치가 바로 폭민정치라 할 것이다. 여기에 일부 종북세력들이 가세하면 정치의 현장은 순간적으로 아수라장이 되고야 만다. 폭민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국민들을 오도하여 빚어내는 잘못된 정치를 말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법과 질서를 무시해도 좋다는 선동과 시범으로 앞장서는 모습에 따라 선량한 국민들은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민주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국민들로 하여금 나쁜 정치를 하도록 유도한 책임을 정치인들은 자각이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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