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신작 조지 밀러 감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그동안 우리는 빈약한 스토리를 화려한 CG로 포장한 채 원작의 위상에 기대 개봉했던 범작들에 지쳐 있었다.

최신 기술에 의지해 현재로 재소환된 전 시대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지나온 세월만큼 커져버린 팬들의 기대치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30년 만에 돌아온 매드 맥스 역시 같은 범주의 영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더구나 조지 밀러 감독은 `꼬마돼지 베이브`, `해피 피트` 등을 연출하며 분명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지만 카체이싱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매드맥스 시리즈와는 상반된 필모그래피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 접한 이후 이같은 우려는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토리부터 연출, 액션, 촬영, 편집까지 30년 간의 공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극장을 찾기 전 케이블채널을 통해 몰아봤던 전작들과 닮은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진화된 매드맥스가 만들어졌다.

핵전쟁으로 지구상의 모든 문명이 멸망한 22세기.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휴 키스번)은 겨우 생존하고 있는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아내와 딸을 잃고 살아남기 위해 사막을 떠돌던 맥스(톰 하디) 역시 임모탄의 부하들인 워보이들에게 납치돼 일명 `피주머니`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사령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임모탄의 폭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를 낳는 도구 취급을 받던 임모탄의 여인들을 구출해 `분노의 도로`를 따라 폭주한다.이에 분노한 임모탄은 자신을 따르는 워보이들을 이끌고 퓨리오사의 뒤를 맹렬히 뒤쫓고, 혼란을 틈타 탈출에 성공한 맥스는 퓨리오사의 일행에 합류한다.

하지만 임모탄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 녹스(니콜라스 홀트)는 끈질기게 맥스와 퓨리오사를 따라붙으며 `분노의 질주`에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대재앙 이후의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황량하기만 한 분노의 도로 위를 질주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는 생존, 자유, 영광, 탐욕 등 각자 추구하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가치의 충돌 과정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카체이싱과 화려한 액션은 색다른 쾌감과 짜릿함을 선사한다. 여기에 뒷통수를 서늘하게 하는 엔진소리와 시종일관 귀를 울리는 날카로운 일렉트로닉 기타의 조화는 관객들에게 듣는 즐거움까지 전해준다.

멋지기만 한 기존 블록버스터 속 차량과 달리 어딘지 허술하지만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영화 속 차량들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스토리가 사막을 질주하는 차량 안에서 이뤄지는 만큼 제작진은 영화에 등장하는 150여대의 차량을 직접 제작하며 공을 들였다. 대형 트럭부터 오토바이, 차량운반차, 공격용 차량 등 개성 넘치는 개조차량의 질주를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시종일관 어둡고 무거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더구나 영화는 질주하는 차량 위에서 펼쳐진 다양한 액션을 컴퓨터 그래픽 없이 생생한 영상으로 담아냈다.

영화가 갖는 또 다른 매력은 주인공 맥스에 비견될 만큼 존재감을 뿜어내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의 등장이다.자동차와 스피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마초적 매력을 과시하던 전작들과 달리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점은 신선함을 넘어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잉태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퓨리오사와 함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탈출해 녹색의 땅으로 향한다는 영화의 스토리 전체를 두고 보면 맥스가 아닌 퓨리오사에게 포커스를 맞춘 감독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과거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시리즈를 현 시점에 맞게 재단장해 새롭게 내놓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30년의 공백이 허무하게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손색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다. 주인공 맥스를 뛰어넘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퓨리오사처럼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연출로 전작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매드맥스 시리즈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오정현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정현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