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박광호 옮김·후마니타스·294쪽·1만6000원

현대를 사는 우리는 늘 불안하다. 발달한 문명에 비례해 삶은 복잡다단해졌고 우리에게 닥쳐오는 재난도 그만큼 많아졌다. 특히 최근 수십 년은 새로운 불안의 시대라 불릴 만큼 전세계적으로 테러, 신종 바이러스, 환경오염, 심각한 생태계 파괴, 불확실한 경제 등 연이은 재앙이 밀어닥치며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갔다. 각종 미디어는 이런 불안감 확장에 한 몫 한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지구상의 온갖 재난, 재해를 보고 있자면 내일 당장 지구 멸망의 시간이 도래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누구는 이런 불안증폭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된다는 음모론을 펴기도 한다. 심약한 현대인들은 이런저런 정신 치유의 구루들에게 의존한다. 그 와중에 온갖 힐링산업과 멘토들의 자기계발서는 번성한다.

이 책은 그런 흐름과는 궤를 달리해 현대인의 불안에 이지적으로 접근, 분석한다.

현대정신분석학의 거두 라캉의 이론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적 이면을 분석해온 솔로베니아학파 이론가인 레나타 살레츨은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단어이자 정신분석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불안`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주체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5가지 불안요인을 꼽으라고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테러, 환경, 질병, 정치, 경제 불안 등 거창한 것이 아닌 `(돈,사랑 등이)충분치 않다, 사람들이 더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것들은 금방 사라질 것 같다, 사람들이 나의 실체를 알아챌 것 같다, 내 삶이 덧없다`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것들을 꼽는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주로 세상 속 자신의 위치 및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관한 것들이다.

저자는, 스스로 끊임없이 위험을 조장하면서도 자기 안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현대인들이 자기 주변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무력해진 것을 후기 산업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병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20세기의 불안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 무기가 사용된 양대 세계대전,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위기와 정신의 위기였다면 풍요의 시대 21세기의 불안은 테러와 바이러스 같은 새로운 재앙의 출현에 따른 것이되 양 세기의 불안이 모두 사람들의 느끼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 자기인식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분석한다. 21세기인들은 자신을 완벽히 통제해야 하는 자기 창조자로서 스스로의 통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어떤 것이든 장애로 분류하고 사회적 기대와 관련해 겪는 내면의 동요는 불안으로 명명한다고 말한다.

그 사이 미디어는 끊임없이 위험을 경고하고 정부는 이러한 불안을 고조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제약사들은 온갖 항불안제들을 팔며 번창하고 자본 역시 불안을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전쟁, 노동, 사랑, 모성, 아버지의 권위란 5가지 주제로 `x파일`,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드라마·영화부터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유행, 사랑을 할 때 겪는 근원적 불안 등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생생한 사례들을 프로이트, 라캉의 이론을 통해 분석하며 불안의 작동원리와 함께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가 오히려 불안을 낳는 역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불안은 우리 사회가 아직은 정신병화 되지 않은 징후이며 근본적 사회변화의 시대가 도래한 후 사회적 수준의 불안이 출현할 때는 우리가 아직 시대적 변화들을 의미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앞날을 더 주의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읽고 나면 불안이 더 이상 제거해야 할 행복의 장애물이 아닌 우리 삶의 위험을 경계하게 해주는 동반자로 인식되며 불안에 영혼이 잠식당할까 싶은 두려움을 해소시켜줄 책이다.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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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정신분석학의 주요개념인 ‘불안’을 통해 현대사회의 변화를 탐구한다. 뭉크의 작품 ’절규’
▼ 저자는 정신분석학의 주요개념인 ‘불안’을 통해 현대사회의 변화를 탐구한다. 뭉크의 작품 ’절규’

노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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