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부처님 오신날 영축총림 통도사 대전포교원 용수사 설문 스님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서기 372년이다. 불교는 우리 토착신앙과 빠르게 융합하면서 1600년 이상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들어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산중(山中)으로 밀려나면서 우리 의식 속에 불교는 `정적(靜的)이고 속세와 동떨어진 선(禪)의 종교`가 되고 말았다.

수 백년동안 `산 속의 절`로 대표되던 불교에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스님들을 중심으로 `동적(動的)인 생활속의 불교`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전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영축총림 통도사 대전포교원 용수사 설문(雪問)스님은 `생활 속의 불교`를 주창하는 젊은 스님 중 한 분이다.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을 5일 앞둔 지난 20일 오전 용수사를 찾았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뻘 되는 신도들과 함께 연등을 만들고 있는 설문스님의 모습 속에서 권위적인 스님은 없었다. 스님과 신도 사이의 `불가와 속세`의 경계는 보이지 않았다. 설문스님은 기자의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도 흔쾌히 허락했고, 사전 질문지가 없이 진행된 두 시간동안의 인터뷰에서도 현재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 앞으로의 방향,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얘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도심 속에 이런 포교원이 있는 줄 몰랐다. 도심에서 포교활동을 하기 어렵지 않나.

"솔직히 어렵다. 대전에 가서 포교활동을 한다고 하니 많은 스님들이 말리셨다(웃음). 충청도 사람들의 특성상 표현을 잘 하지 않고, 늦게 행동하다 보니 처음에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대전을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다리자 신도들이 느리지만 강한 정(情)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신도들이 올 때 갈 때 문 앞에서 인사를 한다. 신도들에게 `성불하세요` 대신 `나마스테(행복하세요)`라고 말한다. 내가 행복하려고 기도를 하는 것이지 스님을 받들기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불가에 몸을 담은 뒤 후회한 적은 없는가. .

"왜 없었겠나. 스님도 사람인데(웃음). 이 곳에 들어와 보니 이 곳도 사람사는 곳이라, 세속에서 보다 더 힘든 과정과 실망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견뎌가며 굳이 불가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도 많았다. 부처님은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이 없는 지 먼저 되돌아봐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남에게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 오해를 풀려고 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다 보면 언젠가는 엄청난 이로운 일들이 돌아온다고 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다 보니 점점 분노와 회한의 감정이 줄어들었다. 조금 더 이해하고, 깊게 보고, 넓게 보는 안목이 생기더라."

-우리 의식속에 절은 산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도심에 있는 절을 보면 혹시 사이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솔직히 한다. 왜 이런 선입견이 생겼다고 생각하나.

"현재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절은 민가 근처에 있었다. 심지어 궁궐 안에도 있지 않았나. 숭유억불 정책을 하던 조선시대에 절이 산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절은 산에 있어야지, 도심에 있으면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절이 도심에 있다 보니 별의별 일들도 많다. 사주를 봐달라고 하지를 않나, 굿을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현사회의 실상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불교가 안고 있는 과제라고 생각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이젠 불교 자체 내에서부터 산중불교에 치중하는 일 보다는 대중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불교로 전환되어야 하며 참선수행과 더불어 염불, 기도, 간경 등 전통적인 수행법과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수행프로그램 운영 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하나, 이 부분이 좀 부족한 것이 이런 결과가 나온게 아닌가 싶다."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지나치게 정적이지 않나.

"지금까지 우리 불교가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정적이었다. 스님이라고 하면 이슬만 먹고 사는 도인인 줄 안다. 속세와 단절된 종교적 삶이 최고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불교의 모습보다는 대중들과 함께 하는 생활불교가 되어야 한다. 부처님 역시 가만히 앉아서 불법만 전하지 않았다. 마을에 기근이 들어 먹을 게 없을 때는 직접 왕에게 공양을 청해서 먹을 것을 가득 수레에 싣고 와서 마을주민들에게 나눠주셨다. 또 제자들에게 게을리 수행하지 마라, 전법(傳法)하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전법을 할 때 둘이 함께 가지도 말라고 하셨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 혼자 다니라고 하셨다. 불교는 태생적으로 동적인 종교이지, 정적인 종교는 아니다."

-불교신도의 연령대가 타 종교에 비해 높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불교의 미래가 위태롭다라는 지적도 있다.

"맞다. 용수사를 찾는 신도들도 대부분 연령대가 높다. 도심에 있는 절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신도들을 보기가 어렵다. 내부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불교가 젊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을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어렸을 때 부터 불교와 관련된 교육을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유치원도 대안 중 하나다."

-사회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있다. 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절대적 빈곤이 아닌 사회적 빈곤이 만연해있다는 점이다. 못 먹고, 못 입는 게 아닌데 옆집에서 좋은 차를 사면 내가 괴로워진다. 자꾸 상대에 나를 비교하게 되면 마음이 괴로워질 수 밖에 없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에 스스로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풍요 속의 빈곤현상이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가정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이해해라, 싸우지마라`라고 교육을 했는데 요즘 부모들은 `맞고 오지 마라. 져서는 안된다`라고 말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안고 살아가다 보니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25일은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설파하시고자 했던 가르침은 무엇인가.

"불교 가르침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부처님은 오실 때도 사람의 몸으로 왔다. 부처님의 삶을 공부하다 보면 굉장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처님은 단 한 번도 당신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스스로 부처가 되라고 하셨다. 자기 자신을 믿게 만드는 종교가 불교이다. 스스로 부처가 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고, 희생할 수도 있지 않나. 그게 부처님의 가장 큰 가르침이다." 글·사진=한경수 기자

설문 스님은 누구

1973년 제주도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때 부산으로 이주해 자랐다. 대학시절 한 사찰에 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읽은 뒤 윤회에 관심을 갖게 돼 2000년에 출가해 이듬해 통도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에 계를 받은 뒤 통도사 강원을 거쳐 2007년에 비구계를 수지했다. 2009년에 통도사 율원에 입학해 5년동안 연구생과정까지 마친 뒤 2012년 2월 영축총림 통도사 대전포교원 용수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20일 대전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영축총림 통도사 대전포교원 용수사’에서 만난 설문스님은 인터뷰 내내 ‘생활속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20일 대전 중구 태평동에 위치한 ‘영축총림 통도사 대전포교원 용수사’에서 만난 설문스님은 인터뷰 내내 ‘생활속 불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경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