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훈 바이올린 리사이틀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사람들은 외롭다. 타고난 것에 대한 세상의 이중성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에 무한 찬사를 보내다가도, 어느샌가 무섭게 돌아서는게 세상인심이다.

그래서 천재는 늘 피곤하고 고달프다. 그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숨는 천재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안타깝게 사고로 떠나는 비운의 천재도 있다.

지난 5월 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은 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어린시절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그는 스승의 죽음 이후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지난 2012년 결혼을 앞두고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지만, 그를 오랫동안 기다렸던 팬들은 어느새 50대가 훌쩍 넘어가 버렸다.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30년만에 돌아온 무대. 올 블랙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활 끝에선 떨림이 느껴졌다.

이날 연주회의 포문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가단조 작품 28`로 열었다. 신기에 가까운 현란한 기교를 요하는 곡 답게 카랑카랑한 `스피카토`(활의 중심부를 사용해 빠른 템포로 연주)로 휘몰아치는 듯한 화려한 연주는 오랜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어 연주된 라벨의 `치간느`. 엄청난 속도의 빠르기로 무언가에 홀린듯한 기분을 들게하며 30년의 휴지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대중적인 곡인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에 이르러서는 자신감을 찾은 듯 활에 힘이 붙었다. 쾌활함과 밝음, 감미로움과 애상을 적절히 대비하며

화려하게 1부를 마감한 그를 향해 관객들은 힘찬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한음 한음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테두리 안에서 인생과 고뇌를 담아 연주해서 일까. 첫곡인 생상스에서는 꽉 채워지지 않는 빈소리와 미흡한 끝음처리, 섬세함이 다소 부족한 듯한 아쉬움을 남겼다.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면 `소리(악기)에서 표가 난다`는 말처럼 그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머리보다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 고도의 테크닉과 자유로움이 담긴 곡 해석력은 2부로 넘어가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가 바로 그랬다. 1, 3악장에서 세련되고 풍부한 감성을, 2, 4악장에서 격정적인 표현으로 악장간의 대비를 통해 악장의 특성을 제대로 드러냈다. 긴장하는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선형훈은 이날 연주를 통해 `아직 살아있음`을, 그 존재감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말하는 듯 했다. 다시 무대로 돌아오고 싶다고. 천재라는 수식어가 음악가에는 다소 괴로움과 외로움을 안겨주지만, 그런 천재성을 표출하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자극시키는 일은 관객들이 할 몫이다. 돌아온 탕자가 효자로 돌아왔듯,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은 그가 풀어낼 음악색깔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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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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