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이 1858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 스티븐 더글러스 민주당 후보와 노예제도를 놓고 공개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링컨은 더글러스로부터 `두 얼굴을 가진 자`라는 비난을 듣자 유권자들에게 "제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라며 재치있는 유머로 웃어 넘겼다. 링컨은 비록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2년 뒤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더글러스를 꺾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데에는 그만의 `여유`와 `위트`가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재치도 돋보인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원조를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숙소에서 목욕중 갑작스럽게 루즈벨트 대통령를 맞이하게 됐다. 처칠은 수건을 허리에 감고 루즈벨트에게 악수를 청했는데 공교롭게도 수건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당황한 루즈벨트에게 처칠은 팔을 활짝 벌리며 "보시다시피 영국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흉금을 터놓을 정도의 친구가 됐다고 한다.

정치는 말의 게임이다. 비판을 할 때도 위트와 유머를 가미할 때 격이 올라간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만큼 언어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치는 물론 교육, 방송 등 어느 곳 할 것 없이 막말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욕은 기본이고 여성 비하에 심지어는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등 사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모욕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마저도 마비돼 버린 `증오 사회`라는 병리현상을 보는 것 같다. 일베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뱉어낸 사람이 공영방송이란 곳의 기자로 뽑히는 것을 보면 할말을 잊게 한다. 우리 사회의 `참을 수 없는 경박함(The unbearable shallowness)`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말할 것 없다. 품격을 잃은 지 오래다. 점점 막말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막말이 오가는 것도 모자라 생뚱맞게 노래까지 불러대는 웃지못할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같은 당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한 `사퇴 공갈` 발언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그는 지난 2월 초 방송 인터뷰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히틀러에 빗대는가 하면 지난 2013년 7월에는 박 대통령을 겨냥, `바뀐 애는 방 빼`라는 막말을 올리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정 최고위원의 사퇴 공갈 발언과 관련, `중징계가 필요하다`와 `과도한 징계는 삼가야 한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는 가운데 오는 26일 최종 징계 여부가 결정된다.

정치인들의 화근은 `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중 "저는 한 나라의 국무총리다. 어떤 증거라도 좋다. 만약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목숨까지 걸었다. 당나라 명재상 풍도는 설시(舌詩)라는 시에서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입은 재앙의 근원이기 때문에 매사에 입조심하라는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자 살아온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서는 유머와 품격이 있는 `촌철살인`의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머를 섞어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다. 19세기 미국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에머슨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 한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놓는다"고 했다. 막말은 자신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낮은 자존감이나 행복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커밍아웃(Coming out)` 시키는 것이며, 자신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행위일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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