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 자신만큼 타인을 이해·배려 각자가 향하는 곳이 바른길 서로 삶을 존중하며 살아야 "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 초파일`이 다가오면 필자는 불자가 아니면서도 한 번쯤 산사를 찾아가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즈음이면 피어나는 계절의 향기가 필자의 마음을 산사에 이끌어 가는 것이다. 유명하고 큰 사찰보다는 깊은 산속에 고즈넉하게 숨어 있는 암자를 찾아가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사람으로 붐비지 않는 그 뜨락에 앉아 아무런 생각 없는 시간을 가져보곤 한다. 그렇게 계절의 향기에 이끌려 찾아갔던 지리산의 한 암자에서 인연을 맺은 스님이 있다. 그리고 30년 전의 그 인연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필자와 그 스님 사이에 소중하다.

필자와 그 스님 간에는 매년 몸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절기가 되면 마음의 만남으로 그 소중한 인연을 확인하는 징표가 있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하여 피는 오동나무 꽃이다.

30여 년 전 그 스님과 만났던 지리산의 암자 아래 냇물 건너에는 돌무더기에서 볼품 없이 자라고 늙어가던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즈음 모든 오동나무가 그렇듯 아무런 값어치도 없어 보이는 그 나무 역시 꽃을 활짝 피워 보라색 물감을 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는 길에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암자의 토방에 앉아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늦봄의 햇볕을 타고 날아온 꽃향기가 필자의 코를 환각에 젖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향기의 정체는 바로 오동나무 꽃의 향기였다.

이 때문인지 향기에 넋이 빠진 듯 몽롱해져 앉아 있는 나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말을 건넨 스님과의 인연 역시 초파일쯤이면 활짝 피는 오동나무 꽃으로 더욱 생생해진다.

그리고 저 멀리 지리산 자락의 그 옛 암자와 오늘의 내가 사는 충청도 들녘은 오동 꽃향기로 마음이 이어진다. 묵언전심이라 할까! 소식 전해줄 말소리 들려오지 않아도 서로의 사이가 느끼는 마음을 전하게 하는 오동의 꽃향기이다. 그래서 아무 데서든 늙은 오동나무에 꽃이 핀 걸 보면 그 스님 생각이 난다. 그러한 사이에 봄철 짙을 무렵이 되면 지리산에서 작설차 한 봉지가 우편집배원 손에 의해 나에게 배달된다. 그래서 나 역시 마음을 보낼 방도를 찾게 된다.

하지만 마땅한 게 없다. 해서 한번은 전화로 물었다. "그곳 산에서 녹차가 내려왔는데 이곳 들판에서는 무얼 산으로 올려 보내야 하오."

대답이 걸작이다. "동양중은 녹차로, 서양중은 곡차로, 그게 맞겠소."

내가 호통을 쳤다. "예끼! 동양중은 누구고, 서양중은 누구란 말인가. 그대와 나 모두 조선중 아니오."

이에 대한 반박이 또한 걸작이다. "그대 옷은 서양식이고 내 옷은 동양식이잖소."

다시 내가 호통을 쳤다. "걸치고 있는 껍데기로만 사람 구별하는구려! 살아가는 처지로 구별합시다. 그대는 산에 사는 처지이니 `산중`, 나는 들에 사는 처지이니 `들중`이지."

그래서 우리 사이 호칭이 정해졌다. 근사한 문자로 정했다. 산승(山僧)과 야승(野僧)으로.

우리는 이렇게 오동나무 꽃향기의 인연을 맺어 산과 들 사이에 떨어져 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 둘을 일컬어 도반(道伴)이라 소개한다. 그러면서 우리 둘 사이에 서로를 호칭하여 `산중`과 `들중`이라 부른다.

이러한 산중과 들중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있다면, 각자의 가는 길에 스스로 진여(眞如)에 아직 이르지 못함을 자탄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한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길만이 바른길이라 하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 바른길 가고 있음을 뜻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서로 말해야 한다. "네가 가는 길 바른길이니 바르게 가고, 내가 가는 길 바른길이니 나 또한 바르게 가자"하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바르게 걸어야 한다. 산길을 가면서 산길답게 가고 또 들길을 가면서 들길답게 가야 한다. 그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우리는 걸으면서 익힌 발걸음의 서로 다름을 탓하여 마음을 부딪치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삶이 그렇게 존중되어야 한다.

윤종관 천주교 하부내포성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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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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