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500리 길

4구간 신상교 아래 물과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뚝방길
4구간 신상교 아래 물과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뚝방길
"복잡한 머릿속, 잠깐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예`를 눌러야 한다. 산과 들이 온통 연초록 새순들의 세상이라면 더더욱 서둘러야 한다. 싱그러운 초록빛을 품어대는 어린잎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넉넉지 않다. 각종 걱정과 고민은 산과 들, 호수에 던져버리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보자. 모든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되는 그 순간, 치료는 이미 시작됐다.

자연 치료제는 멀리 있지 않았다. 제주도 올레길도, 인도 수행길도 아니었다. 차 한번만 타면, 20분-30분 운전만 하면 언제든지 갈수 있는 곳, 바로 대청호 500리길이다.

대청호 500리길은 대전시 동구와 대덕구의 대청호반길 구간(6개구간)과 충북 옥천군의 향수 100리길, 충북 보은군의 보은길,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원군의 청남대 길을 잇는 약 200㎞(21구간)의 도보길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같은 설렘과 흥분은 여행 내내 이어졌다.

"여기 대전 맞아? 대전에도 이런곳이 있었어?". 여행을 마친 이후에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산 자신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썸남 썸녀들, 사진 애호가, 가족들이 순례길처럼 찾는다는 대청호 500리길의 속살이 지금 공개된다.

◇연인들을 위한 6·5·4구간=동구 내탑동 와정 삼거리에서 시작하는 6구간은 연인들을 위한 워밍업 존이다. 하얀 나무 담장이 쳐진 예쁜집 모퉁이를 돌아 오솔길 같은 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대청호의 푸른 물을 만나게 된다. 가슴이 `쿵쾅쿵쾅`. 설렘 주의보 발령이다. 5구간과 4구간 사이에 위치한 흥진마을 갈대&억새 힐링 숲길에 들어서면 설렘 지수는 최고치. 이유가 있다. 환상적인 경치도 경치지만, 신상교아래 물과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뚝방길이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부르기 때문이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고 중간중간 효과음으로 "꺄~악"소리 몇번만 내주면 게임 오버. 썸남이 손을 내민다면, 사귈 확률 95%다. 다만 균형 감각이 없거나 전날 한잔 들이킨 채 술이 덜 깬 상태로 나섰다가 물에 빠지고, 썸남에서 `찌질 남`으로 변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이다. 약 800m에 이르는 뚝방길을 무사히 건넜다면 가슴속 막힌 가슴을 뚫어줄 `엉고개` 등장이요. 누렇게 변한 나뭇잎을 밟을 때마다 기분좋은 `서걱서걱`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찍찍~` `꼬륵꼬륵~` 산새 소리가 더해지면, 별도의 BGM(배경음악)도 필요 없다.

이마에 땀이 맺힐 쯤 권상우와 김희선 주연의 `슬픈연가`를 촬영했던 S자 갈대밭이 나온다. 어설픈 코스프레를 포기하고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으로 고!고! 지금부터는 셔터를 눌러야 할 타이밍이다. 데크, 돌, 꽃 이 삼박자가 어우러져 어느곳에 서든 찍으면 화보요. 그리면 수채화다.

◇사진 애호가들을 위한 3구간=입은 떡~하니 벌어지고 입에서는 감탄사가 나오는 구간이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면 그것은 필시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넋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동구 직동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풍경은 마치 남해의 `다도해`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대청호의 물길 사이로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맑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바닥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어찌 이런 풍경을 두고 셔터를 누르지 않을쏘냐. 시야를 가리는 몇그루의 나무가 흠이지만, 좋은 사진을 담으려는 사진 애호가들의 욕구를 부채질 하기엔 제격인 장소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수원에서 3명의 사진 애호가들이 아무말 없이 대청호를 응시했다. 벌써 4번째 방문이라는 김성호씨(40)는 "6년전에는 휴게시설, 안내판 하나 없이 황망했었는데 지금은 잠깐 있다 가기가 아까울 정도"라며 "이곳은 사람의 눈보다 카메라 렌즈가 먼저 반응하는, 그런 곳"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가족과 함께하기 좋은 2구간·1구간=아무리 좋은 신록도 하루종일 감상만 하라면 지루할 터. 이럴땐 대덕구 이현동에 위치한 두메마을이 제격이다. 봄이면 화사한 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대전의 대표적인 체험마을인 두메마을에선 30여가지 각종 재료로 만드는 산야초 효소 제조 과정 체험, 토속음식 만들기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황부월 대청호 두메마을 대표의 말에 리액션만 잘 해주면 몸에 좋은 효소발효원액 한잔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귀가 번쩍 뜨일 법한 꿀팁(?)도 얻을 수 있다.

대청댐 보조여수로 오토 캠핌장이 조성된 1구간도 가족들이 함께하기 좋은 구간이다. 이곳에는 카라반 10개, 오토 캠핑장 40개, 공연장, 샤워시설, 놀이터 등 최신식 시설과 수려한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식 오픈까지는 한달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잠시 쉬어가는 21구간=1-6구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면, 충북과 대전이 반반씩 걸쳐있는 21구간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습니다.` 폐취수장 2개소가 여행자 휴게쉼터와 전망대. 생태교육,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취수장은 영상 갤러리 및 휴식공간이, 2취수장은 커피숍과 갤러리, 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어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동안 꽁꽁 숨겨져왔던 대청호 500리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만큼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3가지가 들어 있었다. `치유`, `반성`, `감사`. 자연에 몸을 맡긴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여유없이 쫓기듯 살았던 시간에 대한 자기반성이 이어졌으며, 감사가 쏟아졌다.

한가지도 얻기 힘든 보물을 자연속에서 3가지나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집 밖을 나서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글·사진=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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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구간, 금강로하스 에코파크 전경
21구간, 금강로하스 에코파크 전경
대전시 동구 직동 근장골에서 바라본 대청호 풍경. 대청호의 물길 사이로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맑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바닥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대전시 동구 직동 근장골에서 바라본 대청호 풍경. 대청호의 물길 사이로 작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고 맑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바닥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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