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아는 멋집 - 12 대전 대흥동 해를 담은 뜰

그 날도 비가 내렸다. 비는 계절의 바람을 머금고 있었고 그 탓에 풍경(風磬)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기와 사이로 떨어지는 엇박자의 빗소리와 콧가로 스며드는 청록의 향이 인상 깊었다.

어느 시골의 산사(山寺)에서 만난 봄비였다. 흙냄새가 피어났다. 말동무가 없어도 편안했다. 고요했던 기억이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날, 도심 속 산사를 찾았다. 고즈넉한 여유가 필요했다. 중구 대흥동의 `해를 담은 뜰`(대전 중구 수도산로 42-2)이다. 절은 아니다. 시끌벅적한 도심 골목에 위치한 오래된 집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입구가 보인다. 알고 찾지 않으면 지나칠 만 하다. 인사를 건네며 미닫이 문을 여니 김순희(57·여)대표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원래 어린이집을 운영했어요. 이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고 세를 줬었는데 워낙 오래된 집이다 보니 사람들이 입주를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평생의 꿈이었던 카페를 차렸습니다. 전 이 곳에 혼자 있어도 좋아요. 꿈이었거든요"

`칙칙`거리는 커피머신 소리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없다. 천장은 낮았고 바닥에 앉아야 했다. 군데군데 놓인 좌식 테이블은 나무의 삶을 그대로 살렸다. 테이블 위에는 `벌레잡이제비꽃` 한 송이가 자리했다. 창가 옆에 앉았다. 테이블에 놓인 휴지에 눈이 갔다. 몇 장의 휴지를 놓고는 위에 자그마한 돌을 얹혔다. 안락함이 감돈다.

전면을 유리로 한 창가로는 조그마한 뜰이 보인다. 어른 걸음으로 여덟 발자국 안팎의 크기다. 밤부터 내린 비로 뜰에 난 꽃들의 색은 더욱 짙었다.

"원래 여기가 시멘트바닥이었는데 인테리어를 하면서 뜰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창가도 전면으로 튼 것이고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햇살이 카페 안까지 들어와요."

내부는 나무가 주를 이룬다. 벽면도 나무, 창가도 나무, 테이블도 나무다. 김 대표가 전주 한옥마을 등을 오가며 느낀 것들을 이곳에 고스란히 담았다. 사실 자리에 앉은 뒤부터 줄곧 창가 밖 뜰로 시선이 고정됐다. 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은은한 풍경소리 때문이다. 자연스레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 두손을 포갰다. 의자에 앉았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언제였나. 아주머니셨는데 카페에 오셨다가 뜰에 있는 장독대, 고무신을 보고 어렸을 적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눈물을 흘리셨던 분도 계셨어요. 손님들도 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다행인거죠. 손님들이 편안하다는 것은 중요하잖아요."

김 대표의 말에 고무신을 신고 뜰로 나갔다. 아담했다. 한 눈에 담기는 포근함이다. 담을 따라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정원에는 봄꽃이 피었다. 해가 담긴 뜰이다. 지붕은 돌기와가 차곡히 쌓여 있다. 저렴한 기와는 한옥의 맛을 살리지 못할 것 같아 과감히 배제했다. 옆으로 돌아가니 `사랑방`과 `황토방`이 보인다. 이곳에서 손님들은 상견례를 하기도 한다. 그 사이로는 나무 대문이 보인다. 원래 이 집의 대문이었다. 인테리어 분위기를 위해 그대로 대문을 살렸다.

"차 한잔 하세요"

마침 김 대표가 다과를 들고 왔다. 쟁반에는 가래떡구이와 대추차가 놓였다. 한 모금을 마시니 구수한 향이 입가에 풍겨난다. 방으로 들어와도 시선은 역시나 뜰로 옮겨 간다. 김대표는 이 곳이 계절 마다의 멋이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5월에 카페를 열었는데 어느새 1년이 됐네요.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에요. 매일매일 꾸미는 재미에 살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은 더욱 손님들이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생각이에요. 잠시 동안 생각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요. 해를 담은 뜰을 찾는 손님들 모두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카페를 나온 뒤에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이 날도 언젠가 또 다른 고요한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지난 날 산사에서 만난 봄비처럼 말이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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