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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역관·의원… 이들 없인 조선 르네상스도 없었다

2015-04-17기사 편집 2015-04-17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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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중인들 허경진 지음·알에이치코리아·400쪽·1만8000원

첨부사진1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민영환 일행이 러시아 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진. 뒷줄 왼쪽이 김도일(러시아어 담당), 뒷줄 오른쪽이 손희영, 앞줄 왼쪽부터 김득련(중국어), 윤치호(영어), 민영환이다. 정사 민영환과 비서 손희영을 제외한 조선 관료 모두 통역관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정조 재위 시기는 가히 조선의 문예 부흥기, 르네상스라 할 만한 시대다. 이 시기는 정치·경제의 안정과 문화 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리학에만 매몰되어 있던 사대부들의 의식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소중화(小中華)사상이 나타나며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이 고조됐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이 움트고 성하며 서서히 근대의식도 자라던 시기였다. 대개 이 시기의 문예부흥은 문사철(文史哲)에 능한 사대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정조의 르네상스를 만든 건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이었다고 말한다.

중인은 크게 양반· 평민·천민으로 나눠지는 조선의 계층에서 양반과 평민 사이의 중간 계층으로 과거시험을 치러 선발된 전문 관원이나, 사대부에 훨씬 미치지 못하면서 평민이나 천민에게도 존중받지 못한 경계인이었다. 하지만 관직의 변동에 따라 관청을 옮겨 다닌 양반에 비해 그들은 평생 한 관청, 한 분야에서 일함으로써 전문성이 강했다. 비록 신분적으론 천시 당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경제적 윤택 속에 문화의식과 신분적 자의식 또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이 치른 과거인 역(譯),의(醫),음양(陰陽),율(律) 4개의 잡과(雜科)는 지금의 의료, 법률, 금융, 외교(통역), 천문지리이니 중인은 현재로 치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셈이다. 과거에도 못 끼는 취재(取才)로 선발되는 화공, 악공은 곧 오늘의 문화예술인이고…. 이 책은 이처럼 전문지식·문화·예술 전방위에서 활약한 중인들이 없었다면 정조도, 조선의 르네상스도 없었다 말한다.

조선의 중인은 외국에 나가면 진가를 발휘했다.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거나 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통역을 담당하는 중인들의 역할은 매우 컸으며 그만큼 환대받았고 또 외국의 새로운 문물을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의식은 날로 깨이고 문화적 안목은 높아졌다. 그럼에도 중인의 신분 상승은 인정되지 않았고 그들은 자연히 사회제도에 불만이 많았으며 이런 제도와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도 강했다. 위정척사를 내세우며 구제도를 지키려 애쓴 양반들은 세상을 바꿀 수 없었지만 그들보다 앞서 외국어를 습득하고 새로운 전문지식과 세계관으로 무장한 중인들의 활약으로 세상은 변화해갔다. 책은 문헌기록을 토대로 특히 중인의 삶을 충실히 조명한다.

중인들은 인왕산 아래 양반과 섞여 살며 그들만의 문화공동체를 형성했으며 그 안에서 탄생한 문학동인 '송석원시사'는 조선 후기 서민문학을 이끌었다. 스스로 호생관(毫生館)이라 칭했던 조선후기 직업화가 최북은 스스로 눈을 찔러 왕가의 광대가 되기를 거부했고 역관시인 홍세태와 달마도를 그린 화원 김병국은 조선통신사 수행원으로 17·18세기 일본에 한류를 일으킨 주역이었다. 출판에 평생을 바친 장혼은 중국의 천자문을 대신할 교과서 '야회원람', '계몽편'을 편찬했다. 의원 허임과 백광현은 신기의 침술, 의술로 수많은 백성를 살렸다. 중인 중엔 조선인 최초의 미국대학의 학사도 있었으니 역관 변수다. 민족신문 '만세보'를 발행한 오세창은 조선의 1세대 신문기자였다.

이 책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이 시대에, 문사철을 뛰어넘는 근대적 자의식과 세계관의 비범한 지식인으로서 계층의 벽을 디딤돌 삼아 정조시대의 문예부흥과 조선의 근대화를 이끈 중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노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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