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한반도 동북쪽 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가 있고 거기서 동북쪽으로 200㎞쯤 가면 거대한 시베리아의 한대림이 펼쳐져 있다. 면적이 2000㎢나 되는 라조자연보호지구이다.

러시아 정부는 1930년 그곳을 자연보호지구로 정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가 그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 보호지구 동남쪽에 통나무로 지은 관리사무소가 있었는데 1934년 11월 초 삼림관 나조로프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조로프 삼림관은 5년째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60명의 밀렵자를 사살했고 600명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었는데 그 자신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밀렵자들은 그 사나이를 불사신(不死身)의 사나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거기서 삼림관을 도와주고 있는 몽골계 원주민 다이니 영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리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나조로프 삼림관은 뭔가를 예측하고 있었다. 1주일쯤 전에 인근 삼림에서 그림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밀렵자가 돌아다니는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범이 한 마리 죽었습니다."

그림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 밀렵자는 작년 한 해에만 라조보호지구에서 여섯 마리의 범을 죽였다. 그놈을 그대로 두면 라조삼림의 범들이 멸종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다이니 영감의 말에 삼림관은 파이프로 탁자를 내려치면서 침을 뱉었다. 토해낼 데가 없는 울분이 쌓이면 하는 버릇이었다.

"그 죽일 놈이 또 돌아다니는구먼."

나조로프 삼림관은 그동안 열서너 번이나 그 밀렵자의 뒤를 추적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밀렵자는 범의 발자국을 발견하면 물귀신처럼 뒤를 따라다녔지만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짧은 스키화의 자국만 남길 뿐 자신이 어떤 놈인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밀렵자는 범을 잡으면 껍질만 벗겨 둘둘 말아 가져갔다. 범은 껍질뿐만 아니라 뼈, 내장 등 몸 전체가 상당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는데 밀렵자는 그런 건 미련 없이 버리고 껍질만 가져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나조로프와 다이니 영감이 개를 데리고 수색한 결과 다음 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껍질이 벗겨진 수범 사체를 발견했다. 작년에 어미의 보호에서 떨어져 나간 젊은 녀석이었는데 총탄이 정확하게 이마를 뚫고 있었다.

밀렵자 그림자의 소행임이 거의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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