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

올 봄은 유난히 보슬비가 많이 내리는 듯 하다. 대전은 막 벚꽃잎이 떨어지던 차였다. 바닥을 적시는 보슬비가 서운하기도 했다. 깊어진 하늘 아래로 툭 터진 벚꽃을 보지 못해서 인지 탁 트인 바다가 그리워졌다. 뜨거운 태양의 여름도 아니고 칼바람 몰아치는 겨울도 아니거늘 한 봄에 바다라니. 여행은 이유가 많을 수록 설렘이 반감되는 법이다. 비바람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드리운 날, 충남 태안으로 발을 옮겼다.

태안(泰安)은 말 그대로 `크게 편안한` 땅이다. 우리나라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해안에 인접해 있다고 바닷바람이 거세지도 않다.

수종의 97%가 소나무인 덕에 해변은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다. 해안선 길이는 1300리(530.8㎞)로 해변이 32개소, 포구는 42개소가 위치해 있다. 완벽한 바닷동네라는 말이다.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인 탓에 해산물도 풍부하다. 한때 기름유출사고로 홍역을 앓았지만 여전히 서해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 거두절미하고 봄으로의 바다, 태안으로 떠나보자.

◇태안이 한눈에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상`= 이유가 없었던 만큼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정확히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몰랐다. 지리도 모르던 차에 무작정 안내관광소를 찾았다. 행선지를 묻는 우매한 질문에 배광모 문화관광해설사는 백화산으로 가라했다. 그는 그 곳에 가면 태안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차를 돌려 백화산으로 향했다.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리니 태안군이 쏟아졌다. 얼핏 불어드는 봄바람에 벚꽃잎은 흐드러졌다. 나지막한 산인 만큼 소박한 경치가 일품이다. 높은 산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다. 옆에는 작은 사찰이 보인다.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태을암`이다. 여기서 몇 계단을 오르면 백제시대 마애불상 중 가장 오래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상`을 만날 수 있다.

넓적한 바위에 불상을 새겨 놓았다. 그것도 삼존불이다. 세명의 부처가 거대한 바위에 섰다. 세월에 닳아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자애로운 미소가 그려진다. 연꽃을 지긋이 밟고 있는 형상에서다. 삼존불 중 양 옆의 불상은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다. 가운데 아담한 관음보살이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본존불이 중앙에 놓이지만 마애삼존불은 그 반대다. 특이한 형상이다. 느슨해진 옷결이 바위에 새겨졌다. 백제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보 307호로 백제시대 지어졌다. 경주의 석굴암과 다르게 가까이 관람이 가능해 바위의 질감까지 느껴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만지는 것은 안된다.

◇끝에서 만난 바다, `만대항`, `꾸지나무 해수욕장` = "만대항으로 가보세요. 거기가 서해의 땅끝마을이거든요. 조용한 동넵니다." 백화산을 내려와 만대항으로 향했다. `가다 가다 만 데`라는 말이 변해 만대가 됐다는데 과연 땅끝 마을에 어울리는 찬사다. 우리나라 내륙의 서쪽 끝이란 말에 궁금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만대항은 해설사의 말처럼 깊은 한적함을 자아냈다. 몇대의 통통배, 몇곳의 식당이 전부였다. 바다로 뻗어 나간 선착장 위로는 갈매기가 맴돌았다. 다만 이곳은 태안의 해안길인 솔향기길의 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만대항에서 출발해 해안길을 따라 10㎞가량을 걸으면 꾸지나무 해변에 도착한다. 날씨가 따듯해지면 더욱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걷기 좋은 날씨에 말이다.

만대항처럼 조용한 해변도 근처에 위치해 있다. 자그마한 해변을 자랑하는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이다. 끝에서 끝까지 해변을 걸어봤더니 10분이 채 안 걸린다. 특히 주위 바위와 소나무 등을 병풍으로 둥글게 만들어진 해변은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다. 여름철 시끌벅적한 해변보다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바캉스를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해설사의 말마따나 `아는 사람만 아는 해수욕장`이라는데에 적극 공감한다.

◇태안의 짧은 사막, `신두리 해안사구`=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넓게 펼쳐진 모래 언덕이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모래언덕은 국내 최대로 길이 3.4㎞, 폭 0.5-1.3㎞이다. 그야말로 짧은 사막이다. 바닷바람이 모래를 실어와 언덕을 만들었다. 자연 스스로가 만든 경관이다.

사구는 겨울철 북서풍의 영향으로 갯벌의 모래가 육지로 이동하면서 형성됐다. 사구의 모래는 다시 폭풍우에 의해 침식돼 바다로 운반된다. 그 모래가 다시 육지로 이동해 언덕을 만든 것이다. 자연의 순환이다. 고운 모래가 바람에 쓸려 움직일 때면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특이한 지형 때문인지 운이 좋다면 희귀생물도 발견할 수 있다. 개미귀신, 왕쇠똥구리, 표범장지뱀 등이 신두리 해안사구에 살고 있다. 해안사구 앞으로는 신두리 해변이 넓게 펼쳐져 있어 더욱 신기한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한 때 무분별한 모래 채취로 모래언덕이 존폐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지만 당당히 천연기념물 제 431호로 지정돼 보존 중에 있다. 이달 30일까지는 사구 보존을 위해 접근이 금지되지만 모래언덕 주위로 난 산책길을 따라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어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여행과 교육,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배광모 태안 문화관광해설사는 "태안은 삼면이 바다인 지역으로 해변, 포구 등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어딜 가도 멋진 풍경을 간직한 바다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며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튤립축제는 이미 태안을 대표하는 축제로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안락한 여행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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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동문리 마애삼존불상·한적하고 소박한 해변이 아름다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위쪽부터)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동문리 마애삼존불상·한적하고 소박한 해변이 아름다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위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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