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헌법재판소가 요구하는 대로 선거구별 유권자 표의 등가성을 어느 정도 구현시키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선거법은 개정될 수밖에 없다. 영국의 민주정치 발달사가 선거법 개정사였다고 본다면 우리의 경우에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개정하는 선거법으로 하여 우리의 민주정치가 한층 차원 높은 단계로 뛰어오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미 선거법 개정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인구수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하자는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현재의 2배 정도로 늘리고 지역구 의원은 100여 명 정도로 줄이는 동시에 석패율(惜敗率)제도를 두자는 것이다. 석패율제도는 지역구 후보로 등록함과 동시에 비례대표 후보로도 등록하여 지역구에서 가장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당선시켜주는 제도다. 당선자와의 표차가 가장 근소한 후보자를 비례대표 당선자로 한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 단체와 법인의 정치자금도 선관위에 기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도 내놓았다. 지금 한창 가동되고 있는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할 것으로 믿어지지만 우선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의견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에 대한 광범위한 여론 수렴이다. 선거법은 현역의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법이다. 자신의 진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법을 자신들이 아무리 공들여 고쳐 본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기는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이번의 선관위 안(案)은 현역의원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다. 지역구를 100개씩이나 줄이는 안이니 그 100명의 현역의원 지역구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관위 안을 한국정치학회에 통째로 연구용역을 주면 어떨까 싶다.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선관위 안이 우리의 정치현실과 어느 정도 조화할 수 있는지를 전문 학자들에게 물어보자는 얘기다. 평소에도 필자는 우리나라에 선거전문학자가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책방에서 선거 전문서적을 구할 수 없는 것이 단적인 증거가 아닌가 싶어서다. 그러나 선거관리를 전문으로 했던 분들의 생각에 한국정치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해온 정치학자들의 의견이 접목된다면 가장 현실적인 선거법 개정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선거법은 이상적인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헤겔의 명언처럼 우리의 정치문화에 가장 어울리는 선거법이라야 우리의 정치발전에 유효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고질적인 정치적 병폐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정치의 지역성에 있다. 이의 타파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선관위의 선거법 개정안은 아주 훌륭한 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문화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딘가 많이 낯설다는 느낌이다.

우선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그러하다. 지역성을 타파하는 데에는 지극히 합당할는지 모르겠으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정당명부식 투표제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정당명부를 어떤 방식으로 누가 작성하느냐의 문제다.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이 보장되는 고도로 발달된 정당체제에서만 가능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정당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과두화(寡頭化)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이 여지없이 적용되는 현실에서 과연 정당명부식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전국구 비례대표제도도 투명하거나 민주적이지 못한 현실에서 석패율까지 곁들여 시행한다면 우리 정당정치의 왜곡 현상은 더욱 심대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선관위가 정당에 대한 단체나 법인의 정치자금 기탁을 다시 허용하자고 한 것은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정당정치를 하면서 정치인 개인에게는 정치자금을 허용하면서 정당에게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당정치의 본질에 맞지 않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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