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출판 기념 북콘서트 소설가 김탁환
500여명에 가까운 탑승자를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이 TV생중계로 전파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국민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전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켜봐야 했다.
세월호는 그렇게 고통과 눈물의 이름이 됐고, 국민들의 뇌리에서 쉽사리 떨쳐내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소설가 김탁환<사진>에게도 세월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안겼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 돌아오지 못할 자들을 향한 고통스런 절규가 그의 머릿속을 온종일 헤집고 다녔다.
"매일 밤 바다에 빠지는 것 같았어요. 잘 수도 없고, 먹을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살도 10kg이 빠졌네요."
지난 26일 오후 계룡문고에서 열린 `목격자들` 출판기념 북 콘서트에 앞서 만난 김탁환의 목소리는 이렇게 담담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한 작품이 끝나면 금세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던 그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은 듯 했다.
"아직 작품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통상 작품을 출간하고 나면 보름간 제주도에 머물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재충전을 했는데, 이번에는 참 안되네요. 그래서 선택한것이 지방 투어 북콘서트예요. 혼자 슬픔을 감당하는 것보다 독자들을 만나 실컷 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슬픔보다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4월까지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김탁환은 지난달 초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역사추리 소설 `백탑파(白塔派)`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목격자들`을 내놨다. `열하광인` 이후 8년만이다.
"지난해부터 연애소설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4월에 갑가지 세월호가 침몰한겁니다. 남녀 주인공이 말랑말랑한 사랑을 해야 하는데, 한 문장도 쓸 수 없었어요. 선택은 단 두가지, 쓰거나. 안 쓰거나. 한달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 버린 그 시간에 산울림 밴드의 김창완씨는 `노란 리본`이라는 곡을 만들고,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더군요. 본인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던 거지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가만히 있을게 아니라 내가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하자고. 그렇게 탄생한것이 `조운선 침몰사건`이라는 부제를 단 `목격자`입니다. "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전 스스로에게 무엇을 쓸것인지 수십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압축된 것이 생명의문제, 인간 존엄의 문제, 고통에서 비극으로 나아가는 문제로 정리했고 그것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냈다.
`조운선 침몰사건`은 조선시대 조세를 실은 조운선이 침몰해 배와 세곡이 가라앉고 배에 탄 백성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김탁환은 이 사건을 단순사고로 보지 않고 합리적 추리를 통해 주인공들에게 과학 수사를 지시한다. `백탑파`에서 활약했던 명탐정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김진`을 불러내 사건의 배후를 밝히고, 범인들을 색출한 뒤 해결책을 제시한다.
"작품 속에 제시한 해결책은 이랬어요. 조운선 사고 때 함께 희생된 기생과 뱃사람, 어부등을 기리는 비문을 세우고, 정조 임금은 유가족에게 위로의 글을 내리며 생계의 어려움을 보살피겠다고 약속을 한 거죠. 그리고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마을`을 지었지요. 소설속에서는 이렇게 해결했는데, 현실에선 어떻게 해결할지 정말 궁금합니다."
인터뷰 내내 담담함을 유지하던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주항쟁 희생자의 유가족을 만났는데, 유가족들이 그랬답니다. 세월이 약이 아니라고. 잊혀지는것이 아니니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요.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도 하지만, 어떤 사건은 세월로 해결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런 경우겠지요. 덮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소설가와 시인, 만화가들이 1년동안 어떻게 견디고 살아왔는지 결과물을 내놓을 겁니다. 올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니까요. "
그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이 많은 범죄, 이 지독한 악취, 이 뿌연 풍광을 외면하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독자에게도 구경꾼으로 남지 말고 `역사의 목격자`로 남자고, 그리고 잊지 말자고 말한다.
명확한 주제의식, 탄탄한 이야기 구성, 픽션과 팩션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읽고나면 뒷맛이 개운하다. 문제를 푸는 방식이 억지스럽지 않고 논리적으로도 탄탄해 반기를 들을 수 없게 만들어서다.
"독자와 두뇌 게임을 하려면 줄기를 잘 짜야 합니다. 연애소설은 감정에 따라 언제든 고칠 수 있는데, 추리물은 그럴수가 없어요, 처음 짠 대로 가야 하지요. 때문에 관련 서적을 꼼꼼히 읽고 기초 작업을 튼실히 하고 있어요. 자료는 고서와 번역본을 읽는 편입니다."
우리 시대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다작을 하는 밑천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신작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반응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관심있게 보는 곳이 드라마, 영화계 종사자들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이상하리만치 주인공들의 행동이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변환되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에 앞서 주제와 장르를 확실하게 정하고 시작해요. 그것이 명확해지면 글을 쓰면서 수시로 눈을 감지요. 주인공들의 행동과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지, 흐릿한지를 체크해야 하거든요. 그래야만이 독자들도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되거든요. 글이 안 써질때는 잘되는 장면으로 건너뛰기도 해요. 붙잡고 있어봤자, 좋은 글이 안나와요. 대신 관련 서적을 읽는 편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작품을 쓸때도 글 쓰기를 중단한 적이 있었어요. 조선배 만드는 장면이 있는데 일본배의 내구성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쓸 수 있었는데, 공부가 덜 됐는지, 그 장면을 장악하지 못했던 겁니다. 일본 배를 공부하고 다시 글을 썼던 적도 있어요. 이런식으로 작업하면 영화로 만들기도 수월해지죠."
그는 지금까지 썼던 `불멸의 이순신`, `노서아가비` `열녀문의 비밀` 등 몇편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 원작으로 제공했지만 일부는 훼손, 변형됐고, 어떤 작품은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절반은 영화인인 그에게 콘텐츠의 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의 영상 구현은 욕심이 날만도 할 터. 지난해 내친김에 PD출신 동갑내기 고향 친구인 이원태(46)씨와 기획사 `원탁`을 차렸다.
"차기작은 유승호 주연의 `조선 마술사`입니다. 소설 출간전 롯데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끝나 영화 제작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목격자들`에서 빠져 나오면 조선마술사 출간에 매진해야겠죠. 주인공들이 말을 들을지 모르겠지만요."
김탁환이 만들어내는 작품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제는 있지만 해답이 없다. 이를 알기에 그는 말한다.
"사건을 푸는 열쇠는 많이 듣는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하다가 해결이 되기 때문이죠. 지금우리사회에도 `모모`와 같은 수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원세연 기자
◇탁월한 상상력… 역사소설 새지평 - 김탁환은 누구
소설가 김탁환은 방대한 자료조사, 치밀하고 정확한 고증, 여기에 독창적이고 탁월한 상상력이 덧입혀져 우리 역사 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68년 진해에서 태어나 그는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 소설을 공부하면서 틈틈이 시와 소설을 습작했다.
1994년 `상상` 여름호에 `동아시아 소설의 힘`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으며 1995년부터 3년간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에서 국어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건양대학교, 한남대를 거쳐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 현재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끊임없이 변신하는 소설가다. 그래서 황진이, 이순신, 혜초 등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풍부한 고전지식과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팩션을 쓰는 한편, 과학자 정재승과 함께 장편 `눈 먼 시계공`을 신문에 연재하며 사이언스 픽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또 드라마로 제작돼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처럼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들과의 협업작업에 뛰어들어 `스토리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서울 곳곳에 위치한 집필실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변신을 모색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원세연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