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

교태전 아미산 굴뚝
교태전 아미산 굴뚝
"보통 경회루를 둘러싼 연못가에 수양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철의 경회루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녹음이 우거진 여름과 낙엽이 지는 가을, 눈이 내리는 겨울 경회루에서 보는 풍광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습니다." 경복궁 경회루에 오르기 전 무심코 던진 "경회루에서 보는 궁궐은 언제가 가장 아름답습니까?"라는 우문(愚問)에 안내를 맡은 박인주 문화해설사가 내놓은 현답(賢答)이다.

과연 경회루에 오르자마자 정말 괜한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둥과 기둥이 만들어내는 24개의 프레임 속에는 평소 지상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의 고궁과 북악산, 인왕산의 절경이 잘 찍은 사진처럼 펼쳐져 있었다. 문화재 보호 및 관리를 위해 평소 관람이 제한되는 국보 제 224호 경복궁 경회루의 내부가 1일부터 오는 10월까지 7개월 간 일반에 공개된다. 이번 특별 관람을 계기로 경회루와 경회루가 속한 경복궁을 찾아 도심 속 힐링 타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까.

◇ 경복궁의 꽃, 경회루=경복궁 경회루는 경복궁 근정전, 종묘 정전 등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목조건축물로 규모가 큰 연회를 주제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장소다.

경회루가 위치한 경복궁의 구조를 살펴보면 가운데에는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주요건물들이 배치하고, 그 좌우로 나란히 건물을 배치해 음양구조를 만들었다. 또한 전면에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는 외전을 뒀고, 그 뒤에는 침전, 다시 그 뒤에는 후원을 뒀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원래 궁궐이 생기기 전부터 자연적으로 저지대 습지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조상들은 이곳에 북악산에서 흘러온 계곡물을 더해 큰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만들었다.

단일 면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 건물로 인공으로 조성한 섬 위에 단단한 기초를 만들어 수 백년을 버틸 수 있게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경회루로 갈 수 있는 다리는 모두 3개로 신분에 따라 건널 수 있는 곳이 모두 다르다.

경회루 누마루에 오르기 전 1층에서 주변의 경치를 먼저 감상했다. 경회루의 경우 1층에서도 주변의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주변이 모두 뚫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931제곱미터에 가까운 2층 마루 아래에 세겨진 연꽃들과 이를 받치고 있는 48개의 화강암 기둥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민흘림 방식으로 만들어져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기둥들을 한참 지켜보다 기둥들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박인주 해설사는 "우리 조상들은 건물을 지으며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의 개념을 차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깥의 24개 기둥은 네모난 모습으로 만들어 땅을 상징하게 하고, 안쪽의 24개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기둥으로 만들었습니다"며 "전체 궁궐의 설계에도 천원지방의 개념이 사용됐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인데. 궁궐의 주요 건물인 외전과 회랑, 편전 등의 기둥은 둥글고 외곽의 침전이나 신하들의 업무공간 등은 사각 기둥이 사용됐다. 단 경회루는 특별히 한 건물 안에 천원지방의 개념이 사용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 경회루 내부에 숨어있는 디테일도 아름다워=1층을 모두 둘러보고 드디어 경회루 누마루에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1층과 같이 2층의 나무기둥도 바깥쪽은 네모난 모양으로, 안쪽은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진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점은 바닥 역시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기둥이 놓인 안쪽은 높게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기둥이 놓여있는 곳은 낮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바닥은 중앙 3칸이 가장 높고, 다음 12칸이 한 뼘이 낮고, 바깥쪽 20칸은 다시 한 뼘 낮아지는 구조다. 옛 기록에 따르면 중앙의 3칸은 천·지·인을 의미하며 그 다음 12칸은 1년 12달을, 20칸 바깥에 위치한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경회루의 2층 천장에는 1층과 달리 왕을 상징하는 용이 세겨져 있는데 각 칸마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인지 용의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처음 접한 경회루 내부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잠시 눈을 돌려 바깥의 경치를 둘러봤다. 한국식 정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어 중 `차경`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이다. 경회루 역시 인왕산과 백악산, 경복궁이 만들어내는 빼어난 경치가 보이는데 바깥의 24개 기둥과 지붕이 프레임 역할을 하며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이 때문에 경회루는 건물 자체도 국가의 중요한 보물이지만 기둥과 지붕, 난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24점의 풍경화들 역시 모두 귀중하고 지켜야 할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풍경을 즐기고 떠나기 전 경회루에서 작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는 디테일을 발견했다. 경회루 중앙의 3칸에는 칸마다 6짝의 미닫이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열고 닫는 홈이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르게 파져 있는 것이었다. 어릴적 시골 외갓집 미닫이 문을 닫을 때마다 맞는 짝을 찾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유독 눈에 띈 것 같다. 또한 경회루에는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탄 경회루를 중건한 1867년에도 있었다고 한다. 매일 사용하는 건물이 아닌 만큼 새들이 날아와 단청을 훼손하는 일을 막기 위해 얇은 철사를 꼬아 철망을 만든 것이다.

◇ 다른 경복궁 매력도 놓치지 말아야=경회루 관람을 마치고 근정전 마당으로 다시 돌아와 조금 느긋한 걸음으로 경복궁을 다시 둘러보기 시작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은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로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TV나 영화 속에서 신하들이 도열한 조정(근정전의 마당)의 모습으로 친숙한 곳이다. 근정전의 경우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지으며 바깥 부분을 철저히 파괴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난 2001년 홍례문과 외행각, 영제교 등을 복원하며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근정전을 지나면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이 나온다.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다시 사정전을 지나면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강녕전과 교태전이 나온다.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라는 왕비의 후원이 있는데 이 곳에 위치한 계단식 화단과 땅 밑으로 연기 길을 내 후원으로 뽑아낸 굴뚝이 아름답다.

화려한 왕의 집무공간과 내밀한 왕실의 일상공간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왕실의 맛을 책임졌던 장고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문화재청은 경회루 특별관람 기간과 동시에 궁중연회와 제례에 사용할 장을 보관하던 장고를 일반에 공개한다. 경사지를 이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전국에서 수집한 독을 지역과 용도 별로 전시하고 있다. 또한 경복궁 경내에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만큼 함께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오정현 기자

도움말=문화재청·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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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과거에는 멀리 남산까지 보였다고 한다
경회루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 과거에는 멀리 남산까지 보였다고 한다
경복궁 근정전 전경
경복궁 근정전 전경

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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